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잔상-5

아랫부분이 넓으며 윗부분은 좁고 가운데가 약간 들어간 듯한 지점돌 형태. 보관 중에는 넓은 면이 땅에 놓였지만, 실제 지경작업 시에는 가운데에 줄을 묶은 후 뒤집어서 섬세히 얽어매어 줄을 여러 가닥 늘인 후 지점 놓기 작업을 한다. 작업할 때는 지금 위로 보이는 좁은 부분이 땅에 닿도록 다져야 잘 다져진다.
아랫부분이 넓으며 윗부분은 좁고 가운데가 약간 들어간 듯한 지점돌 형태. 보관 중에는 넓은 면이 땅에 놓였지만, 실제 지경작업 시에는 가운데에 줄을 묶은 후 뒤집어서 섬세히 얽어매어 줄을 여러 가닥 늘인 후 지점 놓기 작업을 한다. 작업할 때는 지금 위로 보이는 좁은 부분이 땅에 닿도록 다져야 잘 다져진다.

요즘은 농가에서도 집을 지으려면 굴착기 등 장비가 동원되어 터를 닦고집을 짓기 위한 각종 ·허가까지도 건축업자가 일괄 책임지고 처리하지만 1970년대까지의 농촌에서 집을 짓는 과정은 전혀 다르다.

그 당시엔 우선 주변에 거주하는 솜씨 좋은 목수를 섭외하고, 그 목수의 지도를 받으며 집 짓는 모든 과정을 본인 주선으로 했다. 임야 건 농지 건 자기 땅만 있으면 토지 이동 신고나 건축신고 없이 새집을 지었다. 행정절차라고는 집을 짓고 살면 이장이 면사무소에 구두로 신고를 하고, 공무원이 출장 나와 집 크기를 쟨 후 고지된 취득세를 내고 재산세를 납부하며 살면 끝이다.

농가는 농번기가 되기 전인 봄에 새로 집을 지었다. 삽과 괭이로 땅을 파고 다듬어 집터를 평평하게 고르는데 지반을 단단히 다지는 게 문제였다. 지금은 중장비로 다지면 되지만 당시는 지점돌이라 불리는 100kg 정도의 돌덩이를 사용했다.

이 지점돌로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지점 놓기’ (지경다지기)  했다. 지점돌을 밧줄로 얽어 묶은 후 여러 가닥의 동아줄을 늘여 지점돌을 높이 들었다 냅다 내리찧는 작업이 지점 놓기작업 중 한 가닥의 줄이라도 끊기면 돌덩이가 균형을 잃고 반대편 사람 쪽으로 끌려가고 끊긴 줄잡이들은 뒤로 넘어질 위험이 있으니 동아줄은 튼튼히 틀어야 했고,  한 가닥을 서너 명이 잡고 사람 키높이로 들었다가 내리찧는 방법이니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여 협동으로 해야만 했다.

지점돌 가까이 있는 줄잡이를 ‘목줄 잡이 하는데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한다지점 놓기는 워낙 여러 사람이 함께하고 위치를 조금씩 옮기며 찧어야 되니 참가자 전원이 일심동체가 되어야 하는 팀워크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따라서 작업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메김 소리꾼의 지시대로 옮겨갈 방향을 잡아간다.(△△쪽으로 옮겨 찧어라 “으랏차” 주춧자리다~이 들어라 “으랏차” !)

메김소리는 작업의 지휘뿐만 아니라 집주인의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내용과 노동요 같이 흥이 나는 장단을 넣어 소리를 엮어간다.

마른 흙은 잘 다져지질 않으니 흙의 수분도 적당히 맞춰야 되고 지점 작업 중 높낮이가 생기면 낮은 곳엔 흙을 더 져다 부으며 차곡차곡 지점돌로 내리찧어 기초를 단단히 했다.

지점 놓는 날엔 마을 사람들이 봉사를 했다. 일종에 잔치 겸 일손 돕기인 셈이다. 집을 짓는 사람은 술과 떡을 하고, 많은 주민이 함께 먹을 수 있는 국수를 삶아 대접을 했다. 그러니 지점 놓기 며칠 전부터 통문이 돌아 그날은 각자 자기 일은 접어두고 집을 짓는 집으로 간다. 당시는 배고프던 시절이기에 이런 행사가 있으면 남녀노소가 모여들고 누구보다 아이들이 살판난다. 장정들은 일을 하고 아이들은 구경하고 아낙들은 음식 준비를 하게 되는데, 지점 놓는 날의 분위기를 지금과 비교하면 기업체 사옥 지을 때 기공식 행사장 분위기와 흡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새집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며 밧줄에 묶여 공중에서 춤을 추던 우리 동네 지점돌은 기계를 사용해서 집터를 다지는 등 모든 일이 현대화되면서 홀대받다 사라져 아쉬울 뿐이다.

조상일 음암면 주민자치회장
조상일 음암면 주민자치회장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