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잔상-4

한 해 모내기를 모두 끝내는 날 그 기념으로 만들어 먹는 떡이 필모떡이다. 필모떡은 인절미로 하였다. 인절미는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절구통에 넣고 찧은 후 콩, 팥고물에 굴리면 되니 가정에서 쉽게 만들 수가 있다. 남자들은 모두 논에 나가 모내기를 하고, 떡은 이웃의 아낙들이 함께 모여 찧고 치대어 만들었다.

당시에는 농기계가 없고 천수답이니 모내기 과정이 힘도 들지만 물 사정상 하늘의 배려 없이는 제때에 모내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모내기를 마치며 자축의 의미로 떡을 빚어 하늘에 감사하고 일꾼들과 이웃 주민들이 함께 먹는 풍습이었다.

필모떡을 하는 집은 품앗이꾼의 하룻 일로 끝나는 소규모 농가보다는 농지가 많아 한돌림 품앗이를 끝낸 후 품삯을 주고 일꾼을 모아 이틀, 삼일 모내기를 하는 집이다. 이때는 모내기를 끝낸 이웃 주민이 공짜 일손도 보태며 다 함께 필모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지금은 관정의 지하수와 저수지 물로 농사를 지으니 모두 다 제때 모내기를 하지만 70년대 까지는 한마을에 몇몇 집은 장맛비가 내린 후에야 모내기를 할 수가 있었다.

6월 하순부터 장마가 시작되어 모내기를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장마가 7월로 미루어지면 농민은 애가 탄다. 7월이 되면 모는 못자리판에서 어린 이삭이 생기고 뿌리도 왕성하여 잘 뽑히지도 않는다.

7월 모내기는 하루 늦으면 늦은 일수만큼 소출이 감소되고 작업의 진도는 느리니 힘들고 마음만 급하다. 그나마 늦게라도 모내기를 하게 되면 한시름 놓지만 큰비 없이 7월 상순이 지나면 모내기를 아예 포기하게 된다.

모내기를 못한 논에는 늦게 파종해도 수확이 가능한 메밀을 심었다. 하지만 메밀 농사는 궁여지책일 뿐 쌀과 견줄 곡식이 못 된다. 때문에 필모는 힘든 일을 마쳤다는 의미 이상의 일 년 농사의 한고비를 넘긴 셈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이 상업농이지만 당시는 마을 주민 중 다수는 자신의 식량 거리 농사였다 때문에 모내기를 하지 못하면 온 가족이 배고픔의 고초를 겪게 되니 제때 모내기는 농민에겐 희망 사항이며 자축할 만한 경사였던 것이다.

조상일 음암면 주민자치회장
조상일 음암면 주민자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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