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잔상-1
요즘 농촌에는 못자리 파종이 한창이다. 못자리 파종기의 성능도 나날이 향상되어 하루에 5,000상자 이상을 거뜬히 하니 50,000평 농삿거리를 하루에 해치우는 셈이다.
지난날 농기계와 비닐을 모르던 시절의 못자리 과정을 회상해 본다.
못자리 터 엔 좋은 퇴비를 내는 등 겨울부터 관리를 했다.
당시는 천수답이니 웬만한 논에는 샘이 있다. 청명쯤에 두레박을 이용하여 못자리 터에 논물을 퍼 넣고 농우를 이용 쟁기로 갈고 써레질을 하는데 못자리 면적은 모심을 면적대비 10% 가 필요했다.
써레질과 논 고르기를 하고 새끼줄을 늘린 후 새끼줄 따라 쇠스랑으로 논흙을 파 올려 판 째기를 했다. 못자리판의 넓이는 150cm 정도였고, 판과 판 사이 도랑의 넓이는 30cm 정도로 했다.
이런 규격으로 판을 만들면 120cm 넓이에 낙종을 할 수가 있다. 이는 육묘 과정에서 같이 자라는 피 등 잡초를 뽑아야 하는데 도랑에서 엎드려 팔을 뻗어 가운데 있는 잡초를 제거하기에는 더 넓으면 곤란했다
못자리판 째기를 마치면 판 고르기를 한다. 못자리판의 흙이 완전히 죽탕이 되도록 밟고 주무른 후 두 명이 널빤지 양쪽을 잡고 쭉 밀고 가면 판은 수평이 되며 미끈해졌다.
완성된 못자리판이 모두 잠길 정도로 물을 댄 후 10여 일 전에 물에 담가놨던 볍씨를 균일하게 뿌리면 끝이다. 이러한 못자리 농법이 비닐 보온 못자리 기술이 보급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이어온 물못자리다.
물못자리의 고충은 이제 시작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이 왜가리다. 떼로 날아와 긴 다리로 걸어 다니며 먹이를 찾는데 못자리를 망가뜨리니 쫓아야 했고, 이후에 기온이 오르면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헤엄쳐 다니며 어린싹을 뭉개는 걸 막아야 했다.
볍씨에서 싹이 나서 바늘 끝처럼 올라오면 논물을 빼서 모가 뿌리를 잡고 곧게 서도록 하는데 이걸 눈 그르기라고 했다. 하지만 자칫 지나치면 땅이 굳어 나중에 모를 뽑기가 어렵게 되니 적기에 물 넣기를 해야 했다.
이 외에도 게불이라고 하는 이끼 발생도 못자리 실패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게불 피해는 두꺼운 이끼 덩이가 물에 떠다니며 뿌리가 약한 모가 뽑혀 쏠리게 한다. 게불이 일어나면 모래를 뿌려서 가라앉혀보기도 했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안됐다.
이후에 모의 잎이 두세 잎 되기 시작하면 못자리 실패 걱정은 거의 없다. 못자리판에 물이 마르지 않게 유지하며 잡초만 뽑아내면 된다. 또한 못자리를 실패하는 사람도 많은데 대부분이 이 세 가지 위험요인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못자리를 일부 실패했어도 누군가는 모가 남으니 괴롭기는 해도 모내기는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지금은 100평의 땅이면 15,000평에 심을 못자리 설치가 가능한데 물못자리는 100평이면 1,000평의 논에 모내기를 할 수 있었으니 엄청난 노동력이 소모됐던 애환의 농경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