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잔상-2

요즘은 한 가정에 두 자녀도 버거워하는 분위기이니 어린이는 모두가 왕자, 공주님 이지만 5~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한집의 7~8 남매 틈에서 보살핌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으니 애들은 모두가 각자도생 능력을 일찌감치 터득하였다.

요즘 아이들의 간식은 대부분 마트에서 사서 먹지만 1960년대 초까지의 애들 군것질은 대부분 자체조달 방식이었고 그 방법은 같이 모여 놀던 형, 언니들에게서 자연스레 전수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보릿고개 시절의 아이들 주전부리감을 나열해 본다.


/ 해빙기가 되면 쾡이를 메고 칡을 캐러 간다. 요즘은 어느 산에나 칡이 많아 문제를 일으키지만 그땐 귀해서 깊은 산에나 가야 캘 수가 있었다. 아이들이 좋은 칡을 캘 수는 없었고 억센 칡이라도 한두 뿌리 캐면 입 주위에 칡 물에 얼룩이 지고 잇몸이 얼얼하게 씹으며 다녔다.


올방개(올망대) / 마른 논을 파면 앵두알 크기의 검은 알갱이가 나오고 이걸 껍질을 벗긴 후 먹으면 단맛과 고소한 맛이 났다. 요즘에 볼 수 있는 수입산 올방개 분말 묵가루와 같은 종이다.


버들강아지 / 갯버들이라고도 하는 관목인데 하천변에 자라고 꽃이 진 후 어린 씨앗이 맺을 때 따먹는데 풋내만 있고 맛은 없지만 흔하니 허기는 좀 달랠 수 있다.


띠뿌리(딸뿌리) / 지금은 없애기 어려운 잡초인 띠 의 뿌리를 캐면 우동 굵기의 긴 뿌리가 나오고 이걸 봄에 캐 먹으면 단맛이 났다.


싱아() / 다년생 풀로 굵기는 손가락 정도이며 키도 크다. 새싹이 30cm 정도 자랐을 때 꺾어서 껍질 벗겨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요즘엔 보기 힘들게 없어졌다.


찔레 / 흰 꽃이 피는 찔레는 가시덩굴나무이고 새봄에 새 줄기가 나오면 꺾어서 잎은 떼어내고 먹는다. 물론 가시도 있지만 연해서 먹는 데는 문제가 없고 풋내와 약간의 단맛도 있다.


삘기 / 삐비라고도 했는데 이것은 띠풀의 어린 이삭이 나오기 전의 속 이삭이다. 볼록하게 밴 줄기를 당겨뽑아 껍질을 벗기고 보드라운 속 이삭을 먹는데 연하고 단맛이 난다.


가재 / 물이 마르지 않는 산골 계곡의 돌을 들어 치우면 가재가 나오고 아궁이에 구어서 등껍질만 떼내고 먹는다. 봄철엔 꼬리 부분에 좁쌀보다 조금 큰 알을 품고 있는 것도 잡을 수 있다.


진달래 꽃잎/ 봄에 산으로 놀러 가서 장난삼아 따먹는다. 꽃술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 하여 꽃술은 빼내고 먹었다. 꽃이기에 약간의 단맛이 난다.


잔도라지(잔대) / 비교적 실속 있는 애들 먹거리이며, 산에서 캐면 돌에 비벼 껍질을 벗긴 후 먹는다. 단맛과 향이 좋으며 한약재로도 쓰인다.


아카시아꽃 / 꿀이 많은 꽃답게 맛이 달고 꽃을 구하기도 쉬우니 그냥 따서 흰 부분만 빼서 먹는다. 당시는 아카시아 꽃을 따서 밀가루나 쌀가루와 버무려 범벅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감꽃 / 감나무 아래에 수많은 감꽃이 떨어지면 실에 뀌어 목걸이도 만들고 먹으면 단맛이 있다.


송기 / 송기는 나무가 물이 오르는 봄에 소나무의 2년 전에 자란 부분을 잘라 겉껍질은 벗기고 흰빛의 속껍질을 입으로 훑어먹는데 솔향기와 단맛이 있다.


새알 / 여러 종의 새들이 늦봄쯤에 나무 가지나 잡초 포기 등 은밀한 곳에 집을 짓고 은행알 크기의 알을 낳는데 이걸 집을 지을 때부터 잘 보아뒀다가 네 개나 다섯 개 낳으면 조심스레 꺼내서 대파 쫑대 속 공간에 넣은 후 아궁이 밑불에 구어서 먹는데 계란보다는 더 쫀득하다.

씨앗을 받기 위해 남겨놓은 봄 대파의 쫑대는 두텁고 억세다 덕분에 새알이 깨지는것도 막아주고 쫑대가 타기 전에 새알이 잘 익었다.


버찌 / 산벚꽃이 지고 맺은 열매가 버찌이지만 요즘 왕벚보다는 크기가 작고 약간의 단맛과 떫은맛이 난다.


개미 / 길가나 나무그늘에서 놀다 보면 개미가 팔, 다리를 물으면 따끔한다. 이때 잡아서 허리를 잘라 허리 아랫부분을 빨아먹으면 새콤한 맛이 난다. 이건 사람을 문 죗값으로 봄이 옳을듯하다.


산딸기 / 산비탈 등에 많이 자라기 때문에 바가지 들고 가서 따다가 먹으면 꽤 실속이 있다. 산딸기 딸 때는 벌과 쐐기 쏘임에 조심해야 한다.


지랑풀 / 정식 식물명은 잘 모르지만 길옆에서 포기로 자라는데 워낙 단단히 자리 잡고 있어서 한 가닥 잡고 뽑으면 뽑힌 줄기가 위 잎은 파랗지만 아래 속 부분은 희다. 흰 부분을 씹어 먹는데 단맛이 난다. 이걸 먹으면 기생충이 생긴다고 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덩굴딸기 / 복더위에 익는 딸기이기에 복딸기 라고도 하는데, 땅에 덩굴로 뻗고 딸기 알의 굵기가 크다. 속 씨앗이 단단해서 씹는 식감이 강하다.


방아깨비 / 땅개비라고 하며 잡아서 구워 먹는데 다리와 날개는 아궁이에서 다 타버리기에 먹기가 쉽고 맛도 좋다.


망개 / 멍가라고 했는데 망개도 찔레 덩굴처럼 자라고 열매를 맺는데 크기는 앵두 정도 되고 파란 때에 따먹으면 신맛이 나고 가을에 빨갛게 익은 후에는 껍질을 벗겨서 씨앗에 붙어있는 일부분을 먹는데 단맛은 있지만 실속은 미미하고 뿌리는 한약재로 쓰인다.


개암/ 자작나무과의 관목 식물인데 나무의 굵기나 키는 크질 못하며 열매는 은행 알보다는 좀 작은데 어금니로 딱딱한 부분을 깨트려 속알을 먹는다. 밤보다 단맛은 적고 고소한 맛은 더 좋다 다람쥐나 청설모, 쥐들의 고급 영양식이다.


팥배 / 뽀로수라고 했는데 집 주변에 재배하는 보리수와 맛이나 나무의 종은 같지만 열매의 크기나 익는 시기는 다르다. 굵기가 팥알보다도 좀 작은듯하며 가을에 빨갛게 익는데 단맛과 신맛이 난다.


콩배/ 아가배라고 했는데 감과 고염 관계처럼 아가배는 배와 사촌지간이다. 크기가 앵두만 하여 콩, 아가란 이름을 붙인 것 같고 검은빛으로 익은 후의 맛은 신맛과 떫은맛, 단맛이 난다.


메뚜기/ 방아깨비처럼 구워 먹는데 날렵하고 크기가 작아서 잡는 수고에 비해서 실속이 적다.


까마중/ 땡골이라고 하였고 일년생 식물인데 열매가 송이로 열리고 늦가을에 검게 익는데 단맛이 강하고 한약재로도 쓰인다.


위에 나열한 잡스러운 먹거리를 대부분 먹어봤다면 마지막 보릿고개 세대라 생각된다. 그 당시 아이들은 산야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먹었었는데 이는 허기 달래기 목적 외에도 놀이 중 일부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이 곤충도 거리낌 없이 먹은 셈인데 당시로선 배고픈 시절이니 그것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아이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엔 열 살 안팎 아이도 네댓 명만 모이면 나무꾼이나 다니는 십 리도 넘는 산속 길을 쾡이 메고, 뱀 죽이며 칡 캐러 가던 때이니 그들의 행동과 풍요 속에 자라는 해맑은 어린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좀 서글픈 추억이다.

조상일 음암면 주민자치회 회장
조상일 음암면 주민자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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