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용 회장 “충남도, 40여 가구 남은 한센인 정착마을 보듬어야”

【충남도 기획】 사라지는 마을...한센인 정착마을을 가다

한국한센총연합회 이길용 회장
한국한센총연합회 이길용 회장

한센인 정착촌의 경우 대부분 석면을 사용한 폐축사, 폐가 등이 섞여 있어도 무관심과 과다한 비용 등으로 방치되어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지난 해 말부터 국민권익위원회는 전국 68개 지방자치단체, 한국한센총연합회 등 관련단체와 합동으로 82개소 한센인 정착촌의 석면건축물 방치 현황 등 생활환경과 주민복지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 자료에 의하면 현재 국내에는 총 2,505명의 한센인이 82개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80.5세로 고령이고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80.5%), 유해물질과 악취 등에 노출된 열악한 주거환경과 난방 등 기본적인 생활지원 시스템이 취약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에 한국한센총연합회 이길용 회장을 만나 한센인 정착촌의 생활환경 개선과 복지실태를 진단하고, 개선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 편집자 주

이길용 회장과의 인터뷰 모습
이길용 회장과의 인터뷰 모습

Q. 그동안 한국한센총연합회는 한센인들을 위해 인권과 빈곤, 보건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설명한다면?

연합회는 60년대 설립됐다. 친목 사설단체로 있다가 1966년 정식 설립했다. 해방 후 한센인은 소록도와 정착마을 모두 합치면 약 10만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현재는 일반 재가한센인 약 6000, 정착마을에 2600, 그리고 소록도까지 합해서 약 만 명 정도 남았다.

연합회가 추구하는 것은 인권과 복지다. 사람이지만 사람답게 살 수 없었다. 병든 자에게 위로는커녕 사회는 돌을 던졌다. 숨죽여 살아 온 세월이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전현희, 이하 국민권익위)에서는 지난 해 10월 경주 희망마을 현장조정 이후 12월 익산마을을 시작으로 여수 도성마을과 여천마을 등 20여 개소에 대해 1차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한센인 마을의 석면건축물 방치 현황 등 생활환경과 주민복지 실태를 파악하고 관할 지방자치단체, 환경부 등과 협의해 개선대책 마련을 추진한다고 한다.

이미 80세가 넘는 초고령에 폐축사가 대다수인 마을의 축사 지붕 석면 교체는 환경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만 정착촌 마을사람들의 남은 삶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까.

핵심은 환경문제를 넘어 인권과 빈곤문제 해결이다. 그간 특별법으로 한 달에 17만 원 지원 받고 있으나, 정부나 정치인이나 말뿐이었다. 피부에 와 닿게 도와주는 일은 없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한센인 인권과 복지문제는 산적해 있다. 석면 문제도 있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만큼은 인간답게 살다 가고 싶다.

가족을 잃은 한센인들
가족을 잃은 한센인들

Q. 2021년 현재 국내에는 총 2,505명의 한센인이 82개 정착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한센인 정착촌의 탄생 배경과 그간의 변화 과정에 대해 말씀해 달라.

한센인에 대해 연구했다는 교수들도 실제 상황은 잘 모른다. 강제격리 정책은 일제강점기 총독부에서 시작됐다. 한센병에 양성과 음성이 있지만 격리는 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나도 1963년에 소록도에 있었다. 좋은 약이 생기면서 양성자가 치료를 받아 음성이 되면서 소록도에는 음성환자들이 차고 넘치게 되었다. 결국 이들을 외부로 내 보냈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받아 주지 않았다. 결국 마을에서 떨어진 공동묘지나 깊은 산골 외진 곳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그것이 정착마을이다. 이때가 박정희 대통령 때다.

당시 고 육영수 여사는 한센인에 특히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대했다. 정부 지원책이 전무한 가운데 마을에 전기, 전화 넣어주고 씨돼지를 지원하는 등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 지금도 815일이 되면 참배도 하고 그런다.

남은 정착마을이 이제 82개도 못된다. 한센인을 줄고 도시개발로 도시가 확장되면서 자꾸 밀려나고 있다. 경상도의 경우 삼덕마을처럼 아파트 확장으로 밀려나고 있다. 도시개발의 이익을 위해 약자의 설움은 반복되고 있다. 약자의 현실이다.

소록도에서는 강제 낙태를 강요했다.
소록도에서는 강제 낙태를 강요했다.

Q. 한센인 정착촌은 정부의 강제 격리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그로 인한 인권, 경제적 빈곤, 교육 등 많은 문제점들을 발생시켰다. 한센인 정착촌 입장에서 정부의 격리정책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소록도를 떠난 음성 한센인들이 정착할 땅은 없었다. 1957년 경남 사천에서 벌어진 비토리섬 사건이 그 예이다. 19578. 삼천포 영복원에 살던 한센인들이 농토를 확보하기 위하여 사천 서포면의 비토리 섬에 건너가 개간을 하고 있던 중, 비토리 및 서포면 약 1백여 명에 의해 30여 명이 살해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비토주민들은 한센인들로 인해 병이 전염될까도 염려스러웠고, 기대를 걸고 있던 양식 굴을 비롯해 각종 해산물의 판로가 막힐 것이라고 걱정했다. 영복원 대표단이 자신들이 모두 음성환자들이며 전염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해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피로 물든 828일 해가 뉘엿해질 때쯤 비토주민들은 천막을 무너뜨렸고, 무방비 상태의 한센인들에게 죽창과 몽둥이질이 이어졌다. 괭이와 삽도 이용됐다. 천막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렀다. 화염을 피해 뛰쳐나오는 한센인들을 기다린 것은 역시 죽창과 몽둥이질. 곳곳에 숨어 있던 한센인들도 붙잡혀 포박된 채 죽임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22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2명이 행방불명(바다 투척) 됐으며, 중상자 33, 경상자 23명이 발생했다. 당시 어처구니없는 참극인데도 이 사건은 학살의 주체가 국가가 아닌 주민들이란 이유로 진상규명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법은 또 한센인들이 겪은 여러 피해에 대한 입증 책임을 한센인들에게 돌렸다.

격리정책은 2세들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를 새겼다.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 가난과 멸시, 배척은 대물림 되고 있다. 격리정책의 핵심문제는 인권의 부재에 있다.

아이와의 이별은 또 다른 아픔이었다.
아이와의 이별은 또 다른 아픔이었다.

Q. 한센인 정착마을의 유일한 경제활동은 축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은 대다수 정착마을마다 폐축사, 폐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축산업의 붕괴 원인은 무엇이었나?

한센인 정착마을에 정부 지원책은 없었다. 한 마디로 먹고 살 것이 없었다. 그래서 살기 위해 마을마다 축산을 자발적으로 시작했다. 축산은 정착마을 전체로 확산됐다. 격리된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활동이었기 때문이다. 70~80년대는 계란생산량이 전국 수요의 10% 이상을 차지 했다. 하지만 대기업이 축산업에 진출하면서 소규모 정착마을 축산업은 철퇴를 맞았다. 축산파동과 함께 폐업으로 내몰렸다. 100~200마리로는 대기업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도산과 폐업이 한센인 정착마을을 휩쓸었다. 나도 1984년 마석에서 축산업을 하다가 폐업했다. 정차마을에게 80년대는 악몽이었다. 이때 한센인들도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을 해주어야 한다는 법이 통과된 때이기도 하다. 그 악몽의 그늘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Q. 현재 정착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대다수 한센인들은 80.5세로 고령이고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80.5%)로 경제적 빈곤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전국 보편적인 복지행정서비스조차 정착마을에는 인색하다. 그 실태는 어떠한지?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대도시 인근 정착마을은 철거대상에 들어간다. 일정 부분 보상을 전제로 이주시킨다. 문제는 그 보상금으로는 다른 곳에 가서 집을 살 수 없다. 양도세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들 스스로 자체개발을 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자금이 없는 상황에서 질이 좋지 않는 개발업자들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기도 했다.

복지와 관련해서 90년대 거택양로원제도가 있었다. 일반 양로원에는 간호조무사가 들어와야 하는데 한센인 마을이라 하면 오지 않았다. 결국 마을 스스로 양로원을 짓게 됐다. 문제는 그 양로원을 유지관리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정부 보조는 없다. 기초수급자들이 모여 양로원을 유지관리하기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그 양로원조차 수리할 수 없기에 노후되고 사라져 가고 있다.

인권차원이 아닌 도시개발 차원에서 정착마을을 이전시키거나 해체시키는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은 약자의 목소리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정책 또한 순수한 인권차원이 아닌 돈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씁쓸함이 남는다.

한센인 정착마을이 몇 년 째 급속히 줄고 있다. 질병본부에서는 남은 분들을 한곳으로 모여 살게 하면 어떠냐 한다. 대책도 없이 빈손으로 평생 살았던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 있겠나. 대안 없는 말뿐인 정책 그것도 문제다.

지금은 정착촌마다 음성 한센병에 전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일반인들이 계속 들어 와 살면서 마을 구성원이 교체되고 있다. 대다수 지자체는 한센인들의 자연소멸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사라지기를 바라는 모양새다. 존재조차 없었던 사람들처럼.

‘소록도 천사’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렛
‘소록도 천사’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렛

Q. 한센병은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전염병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에 심어진 사회적 편견의 골은 깊다. 한센인 2세와 그 가족들이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해결 대책이 있다면?

정착마을의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살아 온 한센인들에게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없다. 죽을 때까지 살다가면 그만이다. 이런 경우가 전국 정착마을의 30%정도 된다. 문제는 2, 3세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한센인 자식이라는 낙인외에 남겨줄 것이 전혀 없다. 가난의 대물림을 멈출 방법이 없다.

일본의 경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우자와 2세까지 보상을 해줬다. 격리정책으로 발생한 사회적 책임의 결과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3세들이 겪고 있는 피해에 대해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센인들의 설움을 말로 어떻게 표현하나. 아직도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이혼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사라지는 마을에 희망의 꽃씨를 날린다
사라지는 마을에 희망의 꽃씨를 날린다

Q. 끝으로 정부와 한센인 정착촌이 있는 지자체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린다.

정부는 어떤 하소연에도 예산이 없다는 답변이 일상이다. 사라져가는 마을 한센인 마을에 대해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최근 권익위나 질본에서 정착마을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경험에 비추면 막상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이번 만큼은 진정성 있는 지원정책을 최종 결과까지 이끌어 내주길 바란다.

충남에는 한센인 정착마을이 두 곳이 있다. 남은 가구수도 40여 가구에 불과하다. 충남도의 경우 지원금 17만 원이 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10년이다. 10년이며 거반 다 돌아가신다.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 2, 3세들을 생각해야 한다. 언론도 한센인의 문제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

이 취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글 싣는 순서>

소록도, 아픔의 땅에서 치유의 섬으로

사라지는 마을...서산 한센인 정착촌 영락마을

논산 한센인 정착촌 성광마을의 눈물

한센인 정착촌 변화, 그 성공사례를 보다

한센인 정착마을의 현황과 미래 - 한국한센총연합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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