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행정의 사각지대...한센인 정착마을에 대한 지자체의 각성 촉구

【충남도 기획】 사라지는 마을...한센인 정착촌을 가다

소록도로 가는 길
소록도로 가는 길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한센병 환자들의 격리수용소 소록도와 함께 만들어지기 시작한 한센인 정착마을. 그 긴 세월만큼 대부분 한센인 1세대는 강제격리와 사회적 차별, 인권침해의 민낯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소멸해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아픔은 한 세대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한센인의 배우자 또는 자녀 역시 국가의 강제격리정책의 피해자로 격리되고, 강제적으로 헤어지거나 또는 시설에 같이 입소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한센인이 겪는 인권침해를 같이 겪어야만 했다.

한센인 2세들에 대한 교육차별이 극심했다.
한센인 2세들에 대한 교육차별이 극심했다.

강제격리와 강제노동의 대상이 되었으며, 일반 사회에서는 한센인 배우자와 같은 낙인과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한센특별법 제정 시 이들 한센인의 비한센인 배우자에 대한 문제의식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한센인 정착마을을 기획취재하면서 들여다 본 인권침해의 현실은 정착마을이 한센인 1세대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재 진행형이다.

한센인 정착촌 초기 종교인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다.
한센인 정착촌 초기 종교인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다.

이번 취재는 정착마을이 있는 해당 지자체와 정착마을 한센인들이 대화와 타협으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 전남 나주 호혜마을과 김천 삼애마을의 사례이다. - 편집자 주

나주 호혜원 한센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 ‘한센인 간이 양로주택’ 전경
나주 호혜원 한센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 ‘한센인 간이 양로주택’ 전경

# 한센인 정착마을 인권침해는 현재 진행형

한센인의 배우자 또는 자녀 역시 국가의 강제격리정책의 피해자다.

한센인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그 가족들은 시설에 있을 수 없거나, 더 이상의 지원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비한센인 배우자와 함께 사는 한센인 부부는 한센인 한 명에게만 지원이 나오기 때문에, 그것으로 두 명이 생활해야만 한다.

한센인 자녀 역시 국가의 강제격리정책의 피해자이다. 한센인 자녀는 미감아라는 딱지가 붙여 국가의 잘못된 정책과 낙인과 차별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강제적으로 떨어져야만 했고, 시설에서 양육되었으며, 심지어 일부는 해외로 강제 입양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병원과 국가 등 어느 누구도 이러한 부분에 책임감과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국가는 이들 한센인 자녀를 잠재적 환자로 다루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의 결과 일반 사회에서도 한센인 자녀를 한센병 환자와 비슷한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결과 196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한센인 자녀의 초등학교 등교 반대 운동이 일어나 이들의 교육권에 크게 침해당하게 되었다.

많은 정착마을에서는 끝끝내 한센인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등교할 수 없게 되어, 마을 안에 분교를 설치하여 여기서 공부했다. 분교에서의 교육은 일반 초등학교에서의 교육보다 그 질이 현저히 낮았다. 반면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한센인 자녀는 다른 학생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의 표적이 되어 고통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학교나 정부의 제도적 보호는 전무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낙인과 차별의 결과 한센인 자녀 역시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한센인 자녀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부모와 고향을 숨기고 살고 있고,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반인과의 결혼을 기피하고 다른 한센인 자녀와 결혼을 한다던가, 자신의 부모를 숨기거나 부모가 한센인인 것을 숨기고 결혼을 했다.

그러나 결혼 후 부모가 한센인인 것이 밝혀지면 이혼당하거나 가정불화의 원인이 됐다. 이러한 이유에서 한센인 자녀는 자신의 부모와 관계가 단절되거나 소원해진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가의 잘못된 강제격리정책과 한센인 자녀에 대한 분리 양육 정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일부 한센인 자녀 문제는 정착마을의 미래와도 관련되어 있다. 사회복귀가 실패한 일부 한센인 자녀는 정착마을에서 자신의 부모와 같이 살고 있다. 이들은 정착마을에서 부모를 도와 축산업을 하기도 하고, 부모를 대신에서 마을의 여러 행정업무나 대소사를 처리하기도 하며, 마을을 대표하여 일반인들과 접촉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센인 정착마을이 점차 해체되는 과정 중에 이 마을에 주어졌던 여러 혜택들이 사라지고 있고, 정착마을이 해체 될 경우 이들은 갈 곳을 잃게 된다.

정착마을의 생계를 담당했던 축산업도 대부분 폐업의 기로에 서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정착마을의 축산업은 환경오염 등의 문제로 지자체에서 해체 압력을 받고 있다. 환경문제와 한센인 자녀의 생존권이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경북 김천 삼애마을 간이양로주택(가칭 김천행복타운) 전경
경북 김천 삼애마을 간이양로주택(가칭 김천행복타운) 전경

# 한센인주거복지시설엔 관심조차 없는 지자체들

한센특별법은 한센인을 위한 주거복지시설과 의료복지시설을 설치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몇 개 정착마을에 간이양로시설이 설치되고 있지만, 고령화나 마을의 해체를 고려하지 않은 최소한의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한센인의 열악한 주거환경 역시 국가의 임시방편적인 정책의 결과 때문이다.

1960년대 효과적인 치료제 도입으로 치료된 한센인이 늘어나자 국가는 세밀한 계획이나 예산지원, 사회복귀 교육 없이 국가 소유의 공유지나 종교단체의 토지에 한센인 정착마을을 설립하고 치료된 한센인들을 이주시켰다. 이곳에서 한센인은 생존을 위하여 투쟁하여 살아남았다. 먹고 살기 위하여 축산업에 종사하기 시작했으나, 전문 기술이나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더 중요한 것은 좁은 공간에 거주지와 축사를 같이 설치해야 했기 때문에, 그 주거환경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다.

또한 토지 소유가 여전히 정부나 종교단체 등으로 되어 있는 경우 주거시설이 열악하더라도 마음대로 수리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많은 한센인 정착마을의 주거환경은 매우 열악하고, 곧 허물어질지 모르는 공간에 여전히 생활하고 있는 한센인도 있다. 이 때문에 한센특별법에서도 한센인을 위한 주거복지시설과 의료복지시설 설치를 명시하고 있다(10).

그러나 지자체들은 예산타령으로 수십년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의 외면과 무관심과 다름없다. 경북 김천 삼애마을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등이 합심하여 한센인 주거복지시설을 만들었다. 또 나주 호혜마을은 인근 기업의 지원으로 현대식의 시설을 만들었다.

주 호혜원 옛 마을에 설치는 고 육영수 여사 송덕비
주 호혜원 옛 마을에 설치는 고 육영수 여사 송덕비

# ‘한센인 간이 양로주택’...나주 호혜원 한센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

나주 산포면 신도리 2구 마을인 호혜원에 '한센인 간이 양로주택'이 지난 2019521일 완공됐다. 구 신도분교 부지에 건립된 총 8개동 50세대 규모이다. 한센인 간이 양로주택은 건축물 총 연면적 5215로 주민편의시설이 포함된 관리동(보호시설 겸용) 1, 양로주택 8개동 50세대 규모로 건축됐다.

그 배경에는 나주시 혁신도시 개발이 있다. 한센인 정착촌인 호혜원은 혁신도시에서 불과 600m 떨어진 곳으로 낡은 축산단지에서 발생한 악취 문제가 혁신도시 정주환경에 큰 걸림돌이 됐다. 오랜 기간 주민 갈등과 논의가 진행됐다. 마침내 호혜원 주민들이 생업인 축산업을 포기하고 혁신도시 정주여건 개선에 적극 협조하면서 축산폐업 보상을 마쳤다.

이에 나주시는 한센인들의 노후 주택 문제로 인한 주거편익 차원에서 한센인들의 신청을 받아 한센인 간이 양로주택을 건축해 입주시켰다. 국비 40, 도비 20, 시비 30억 원 등 총 공사비 90억 원을 들여 12개월 만에 준공했다. 간이 양로주택에는 한센인 1세대가 사망해 남은 미망인 가족들도 입주했다.

나주시의 적극행정으로 호혜원의 축산업 이전과 폐업 보상의 물꼬가 트이면서 축산농가 생계 대책 마련은 물론 혁신도시 정주 환경개선에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

한편, 호혜원은 고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인 고 육영수 여사가 방문했던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1965년 고 육영수 여사가 이 마을을 처음 방문했다. 그 후 목욕탕 건립 민원이 해결됐다. 이후 1971년 두 번째 방문 때는 종돈 55마리를 기증, 현재 마을 주민의 자립 기반 씨앗이 됐다. 주민들은 이에 보답하기 위해 1975년 육 여사 추모비를 건립했다.

김천 삼애마을 폐업된 축사들 모습
김천 삼애마을 폐업된 축사들 모습

# 김천 삼애마을...김천행복타운으로 거듭 나

경북 김천시 김천역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야산에 올라가면 석면슬레이트 지붕으로 뒤덮인 허름한 마을이 나온다. 국내에서 규모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한센인 정착촌 삼애농장이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닭을 키웠던 축사 100여개는 폐축사로 방치돼 있다.

신음동에 소재하는 삼애원은 1950년대 처음 정착할 당시에는 시가지 외곽의 변두리에 불과했으나 90년대 중반에 시청사가 신음동으로 이전하고 신시가지 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도시의 중심이 됐다.

삼애원 양계농장과 1980년에 설립된 계분공장은 계분악취로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오랜 기간 숙원사업으로 김천시의 최대 현안과제가 됐다. 20074월 악취의 주범이었던 계분공장 폐쇄를 이끌어냄으로써 삼애원 개발의 첫 단초를 마련했다. 또한 주민들의 이주동의를 성공적으로 받아내고 삼애마을 간이양로주택(가칭 김천행복타운)을 건립 지난 20186월 준공해 입주했다.

김천 혁신도시간 도시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김천 혁신도시간 도시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김천행복타운은 1인세대 42세대, 2인세대 23세대로 4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부대시설로 강당 및 경로당, 관리실 등이 있다.

이 사업은 국·도비 46, 시비 34억 원 총 80여억 원을 확보해 20166월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위·수탁 해 건축공사를 추진했다.

한편, 삼애마을은 김천시 성내동에 사는 남산동 성결교회 장로인 남영호가 1950년부터 김천시 신음동 다리 밑에서 노숙 방황하는 음성 한센인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45월 김천시 신음동 산 17번지 일대 임야 99174를 사들여 가건물을 짓고 음성 한센인 30명을 집단 수용하여 양계업으로 자활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1957년에는 보사부 을류나료소(乙類癩療所)로 인가되어 정부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 집단 주거지를 삼애원으로 이름 지어 부르게 되었다.

1975년에는 부지가 4958705배 넓어졌고 주민은 200가구에 897(467, 430)으로 약 30배가 늘어났다. 의료 시설로는 진료소가 설치되었고 전용 목욕탕, 이발소, 운동장 등을 갖추고 있었다. 1964년에 모암국민학교 삼애원분교가 설립되었다.

고 육영수 여사 호혜원 방문 사진
고 육영수 여사 호혜원 방문 사진

# 한센인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국가 한센인 정책은 한센인 정책이 아닌 여전히 한센병 통제 정책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2018년 이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고령한센인을 위한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즉 한센인에 대한 의료적 접근에서 생활복지적 접근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고령한센인이라는 특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노인복지서비스가 제공되어야만 한다. 여기에는 지자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자체 내에 있는 한센인 정착마을의 고령한센인에 대한 지원사업에 있어 지자체의 관심과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늦었지만 몇 개의 지자체에서 조례를 통과시키고 있다. 2016년 영암군은 한센인 피해자 지원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켜 한센인의 날 행사나 한센인 주거복지시설 환경개선사업에 지원할 것을 결의했다. 이와 같이 자기 지역내 한센인 정착마을의 요구사항을 지자체가 잘 청취하고 이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해야만 한다.

밀양시 역시 중앙정부와 협력하여 한센인을 위한 현대적 시설을 만들었다. 한편 한센인 생활시설의 제도적 변화도 필요하다. 이번 취재에서 살펴본 나주시 호혜마을이나 김천 삼애마을의 경우도 좋은 사례다.

국가의 강제격리정책으로 인하여 한센인뿐만 아니라 그들 가족 역시 낙인과 차별로 인하여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센인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가는 한센특별법을 제정하여 한센인 피해자에 대한 지원 제도를 마련했으나, 취재에서 드러난 사실은 한센인의 피해를 회복시키기에는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최근의 한센인 집단의 고령화는 이러한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센인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복지행정의 사각지대. 한센인 정착마을에 대한 광역단체와 지자체의 각성을 촉구한다.


<글 싣는 순서>

소록도, 아픔의 땅에서 치유의 섬으로

사라지는 마을...서산 한센인 정착촌 영락마을

논산 한센인 정착촌 성광마을의 눈물

한센인 정착촌 변화, 그 성공사례를 보다

한센인 정착마을의 현황과 미래 - 한국한센총연합회장 인터뷰


이 취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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