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②

 

제일 좋은 계절이자 ‘가정의 달’인 5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부모님,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 선생님, 친구들을 떠올리면 저절로 감사가 나오는 때입니다. 그 중에 가장 맘이 쓰이는 분은 부모님이고, 그래도 한 분을 선택하라면 저에겐 어머니입니다. 

신이 어디에나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창조했다는 말처럼, 어머니는 그 확신을 주는 분이죠. 한편, 여러 이유로 어머니를 선택할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일찍 돌아가셨거나 아들만 감싸던 편애, 구박만 하던 새어머니 때문에 어머니라는 말이 상처로 남은 경우입니다. 어머니에겐 이타적이면서 이기적인 양면성이 있다고 할까요? 

고대 로마에서도 두 가지 모습이 혼재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엔 원치 않는 아이, 곧 여아나 불륜으로 낳은 아이가 어머니에 의해 버려지는 일이 흔했습니다. 우량한 아들을 낳아야 남편에게 사랑받고 출산의 책임을 홀로 감내하는 당시 여인들의 슬픈 운명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생긴 ‘어머니는 늘 확실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Mater semper certa est, pater numquam)는 말이 있습니다. 이 격언은 얼핏 칭찬처럼 들리지만 모성과 정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버려진 아이의 신원을 확인할 때 아버지를 알 수 없는 때가 있지만, 어머니의 확실성은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자기가 살기위해 아이를 버리는 이기적인 어머니는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로마사회는 모성의 긍정적인 면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모든 것 위에 있다’(Amor matris super omnia)는 격언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로마를 상징하는 시인 베르길리우스(B.C. 70-19)가 로마의 시조로 추앙받던 아이네이스를 노래한 서사시와 연관됩니다. 

주인공 아이네이스가 저승을 방문하여 죽은 아버지를 만나 얘기하는 중에 어머니를 “아들, 며느리와 자녀들이 구별 없는 형제로서 함께 살아가게 할 것”이라 묘사합니다. 곧 어머니의 사랑이 자녀는 물론 며느리와 태어날 손주들에게도 미친다는 것이죠. 

이처럼 베르길리우스는 가족을 하나로 묶으며 혈연을 넘어서 세대까지 연결하는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이 불멸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늘도 어머니의 두 가지 모습은 공존합니다. 자녀를 무시하거나 편애하고, 자녀를 위한다며 자신의 꿈을 대리 실현시키기 위해 아이를 병들게 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반면, 자녀를 위해 희생하되 좋은 세상이 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사람으로 키우려는 철학을 가진 어머니도 있습니다. 

20세기의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과 경쟁할 땐 이기적인 사람이 이겨왔지만, 이기적인 집단과 이타적인 집단이 경쟁하면 이타적인 집단이 승리해 왔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무한경쟁의 살벌함이 지배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 협력과 공존, 희생의 이타성이 더 깊숙이 자리한 덕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의미죠. 최고로 공헌한 분들이 어머니이기에 우리 어머니들은 우주만큼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잠시 어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신부수업(?)을 위해 집을 떠나 신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때 “하느님께 폐를 끼치는 삶을 살 거면 언제든 나오너라!”시며 뒤돌아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 땐 고생길이 훤한 자식 걱정보다 하느님을 먼저 찾는 것이 서운했지만, 그 덕인지 겨우 욕을 먹지 않을 만큼은 사는 것 같습니다. 

그 어머니를 7년 전 떠나보냈습니다. 이젠 올바로 살아야 한다고 잔소리하고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생각나는 사람이 더 이상 없습니다. 그 아쉬움과 그리움 때문인지 힘들면 먼저 어머니가 쉬시는 봉안당을 찾곤 합니다. 말 나온 김에, 5월이 지나기 전 엄마에게 다녀와야겠네요.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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