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①

제 심기가 좀 불편합니다. 거울보기도 겁이 납니다. ‘골때녀처럼 의욕적으로 축구를 하다 근육을 다쳐 절뚝거리고, 심한 치통으로 사탕을 하나 물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죠. 하긴 요즘, 어느 것 하나 잘 풀리는 일이 없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지요.

개인적인 어려움에 더해 전염병과 전쟁, 지구환경의 위기와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줄타기 하듯 재주를 부려야 하는 우리 운명은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고 갈등을 증폭시킵니다. 불행이 미세먼지처럼 가득 차 있고 좋아질 가능성마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미래의 밝은 희망이 잘 보이지 않을 때 가짜가 판을 치게 마련인데, 비슷한 일이 주변에서 벌어지곤 합니다. 감독의 관상을 보고 프로야구 성적을 예측하며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풍수를 따지는 운명론자들이 영향을 미치는 현실입니다.

행운은 유리와 같다’(Fortuna vitrea est)는 라틴어 속담은 행운과 성공의 연약함을 말합니다. 행운과 성공은 덧없고, 유리잔처럼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깝게는 내 건강과 재산과 목숨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이는 로마 역사상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신으로까지 추앙받던 카이사르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는 군사적 승리와 뛰어난 정치적 감각으로 로마의 원로원까지 장악하여 1인 독재체제를 이뤄냈습니다.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기 상황의 위험을 인식하며 전쟁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운세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언제든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맥락으로 위 속담을 인용합니다.

자신의 성공이 결코 보장되어 있지 않으며 언제든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체험적으로 깨닫고 있었죠. 실제로 황제 등극을 앞두었던 카이사르는 신뢰하던 양아들 브루투스에게 암살을 당합니다.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는 장면은 평소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하는 사람들의 관용구처럼 지금도 인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카이사르를 암살하고 승리에 도취되었던 공화파의 비극적 운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카이사르처럼, 찬사와 조명을 한 몸에 받던 사람들의 운명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보곤 합니다. 내 삶에서도 한 번의 작은 실수와 잘못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예를 수시로 경험합니다. 반대로 불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웃이 새로운 모습으로, 아주 괜찮은 향기를 풍기며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고통을 제대로 겪어낸 사람의 단단함과 성숙함은 뭐로도 깰 수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행운이라고 여겼던 것에서 불행이 오고,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행복의 열쇠를 발견하는 재미가 인생에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의 양면처럼 공존하며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역동적인 것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잠시 누리는 건강, 성공과 행복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믿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행운은 유리와 같다는 말은 이런 삶의 불확실성을 냉정히 깨닫게 합니다. 행운은 지나가는 것이니 너무 좋아할 필요가 없고, 실패와 불행도 지나가는 것일 테니 너무 기죽을 필요도 없겠지요.

그저 잠시 주어진 좋은 시간을 감사할 줄 알고, 힘든 시간을 견디는 면역력을 기르면서 더 성숙하고 현명해지는 법을 배울 겸손으로 산다면, 운명에 끌려 다니지 않고 매일 매일의 행복을 더 오래 누리지 않을까요!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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