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웅 편집국장

이제 곧 구정, 우리의 새해맞이 설이다. ‘설’은 순수 우리말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새해 첫날이라 낯이 설어 설날’이라 했다는 이야기와 ‘나이 먹기가 서러워 설날’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설은 한해의 첫날이라는 뜻에서 원일(元日), 원단(元旦), 설날 아침이라는 의미로 원조(元朝) 혹은 정조(正朝)라고도 말한다. 어느 나라나 새해를 맞는 사람들의 마음은 새로 시작되는 한해의 안녕과 발전을 빌게 되며, 그 전통과 양식은 다르더라도 새해가 복된 미래이기를 비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지금은 잊혔지만 조선시대에는 ‘묵은세배’가 있었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묵은세배를 하느라고 이날 초저녁부터 밤중까지 초롱불을 든 세배꾼들이 골목길을 누볐다”고 하였다. 묵은세배는 섣달그믐날에 ‘한해를 무사히 보냈다’는 의미로 그간 돌보아 주신 어른을 찾아뵙고 드리는 인사예절이다.

서양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는 풍습이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섣달그믐날 밤에 신발을 안고 자는 민속이 있었다. 이는 야광귀(夜光鬼)라는 호기심 강한 귀신이 아이들의 신발을 밤에 신어보고 자기 발에 맞는 신발 주인에게 병을 준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하여 문 앞에 채나 어레미를 걸어놓았다. 호기심 많은 야광귀가 그 채의 구멍을 밤새 세다가 날이 밝으면 그냥 돌아간다고 믿었다. 또 그믐날이 까치설인 것은 길조인 까치가 새해 기쁜 소식을 가져온다는 기대에서였으며, 그믐 자정이 지나면 복조리장사가 골목을 누볐고 일찍 살수록 복을 많이 받는다는 속설로 앞 다투어 몇 개씩 사 묶어 매어두고 쓰기도 하였다.

이처럼 추억이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우리의 오랜 전통이 요즘은 보기 힘들다. 생활환경의 변화 등으로 복잡하고 귀찮은 과정이 생략되고 사라져 가고 있다. 대가족이 사라지고 핵가족, 홀로 사는 홀몸가족이 많아지니 이웃과의 관계와 의식까지도 변했다.

한나라의 전통이나 세시풍속 등 고유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함께 내려온 것이다. 알게 모르게 그 민족의 형성 인자(因子)를 이룬다. 내가 내 것을 모르고 자존하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존중할 이가 없다.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살피고 그 속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교훈을 찾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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