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김기숙

김장 할 때 나는 배추김치보다 동치미에 대한 욕심이 더 많다. 작은 항아리에 초련 먹을 것을 담고, 스무날 쯤 있다 큰 단지에 한 번 더 담는다. 두 번째 담은 동치미는 동짓달이 지나서 먹는데 참 맛이 일품이다. 우리 집 다용도실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동치미를 담아 두기에 적당하다. 살얼음과 함께 먹는 동치미는 겨울 불청객인 냉면도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담은 동치미를 무척이나 좋아 했다. 친정 부엌은 엄청 추웠다. 친정어머니는 부엌에다 김치 항아리를 여러 개 놓고 여름에 먹을 짠지를 담고, 다음에는 배추김치, 다음에는 게국지,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동치미를 담으셨다.

배추김치와 게국지를 먹다보면 동치미는 익는다. 부엌에서는 불을 때서 밥을 해 먹건만 동치미 항아리는 으레 얼었다. 나무가 귀해서 변변하게 때지 못한 아궁이는 불씨가 초저녁에 사그라지고 방바닥조차 사람의 온기로 녹일 때가 있었다. 가리개가 없는 토방엔 밤사이 내린 눈이 마루까지 내려 앉아 겨울 손님을 자처하며 식구들 신발조차 눈으로 덮여 있다.

아침을 지으러 나가시는 어머니는 수수 빗자루로 마루와 토방만 대충 쓸고 부엌으로 가셔서 물 항아리 어름을 깼다. 얼마나 추웠으면 물 항아리가 얼었을까. 잘 깨지지 않는 얼음을 부엌칼 끄트머리로 흠집을 내어 간신히 깨서 가마솥에 붓고 불씨를 살리는데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솔가리로 불쏘시개를 만들어 넣고 위에는 생솔가지를 요령껏 얹어 놓는다.

불쏘시개만 홀딱 타고 생솔가지는 칙칙 타는 척 하다 그대로 꺼진다. 어머니는 나뭇간에 가셔서 긁어도 나오지 않는 솔가리를 찾아 입으로 ‘호호’ 불어 불씨를 만든다.

얼마나 힘이 부칠까. 아궁이속 저 깊은 골에서 매캐한 연기와 함께 불씨가 살아나자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부엌문도 션찮고 쥐도 들락거리는 부엌은 황소바람이 들어와 추위도 동반하여 어머니의 마음과, 손, 발을 더 시리게 하는 공간이었다.

부엌을 차지하는 물 항아리가 얼었으니까 작은 동치미 단지인들 가만있었을까.

짠지는 간이 엄청 짜니까 얼지를 안했는데 동치미는 간이 심심해서 동치미 얼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어머니는 동치미를 꺼내시면서 “단지까지 얼었으니까 더 추웠으면 깨질 뻔 했네” 작은 목소리로 혼자 말씀 하신다. 어머니가 밥상에 길쭉하게 썰어온 동치미속은 다이아몬드처럼 얼음이 숭숭 박혀있고 한 쪽씩 들고 먹으면 입이 얼얼하다.

우리 집 동치미도 요즘 추위에 살짝 얼었다. 동치미는 아무 때나 맛있는 것이 아니다. 가을무로 담은 겨울 동치미가 제 맛을 낸다. 나는 동치미가 익어 먹기 시작하면 겨울 간식거리인 고구마를 자주 쪄먹는다. 고구마를 먹고 목이 메여 마시는 국물 맛은 사이다 맛처럼 시원하다.

방금 찐 고구마를 먹으면서 목이 메는 것은 무슨 이유 일까.

함박눈 소복이 쌓인 밤 어릴 적 먹던 어머니의 동치미가 오늘따라 더 유난히 그립다.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