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보수화, 당연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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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보수화, 당연한 것인가?
  • 류종철
  • 승인 2018.01.11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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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정의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기 보다는 전통과 법의 가치를 주장한다는 것에서부터 가족과 국가의 가치를 최고로 여긴다는 것까지 정의는 실로 다양하다. 많은 보수의 정의 중에 최근 들어 가장 오용되는, 듣기 거북한 정의는 보수는 반공이고 애국이다라는 개념이다. 즉, 이 개념은 보수의 반대 개념인 진보세력들을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공산주의자들로 악의적으로 왜곡하기 위해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사용하는 잘못된 개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수구적인 언론이나 정당, 일부 맹목적인 수구단체에 의해 재생산되어 이런 잘못된 개념이 통용되는 것 또한 현실이다.

또한 진보와 보수를 연령대 별로 구별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나이가 젊을수록 진보적이고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한다는 통설을 여기서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젊은이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변화를 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관념, 즉 젊은 사람일수록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보수의 가치인 법치와 인권, 전통과 국가를 등한시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나 동의하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사고위에 인류의 보편적 평등과 인권, 사상의 자유, 그리고 끊임없는 사고의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적 가치를 갖는 것이 젊음이의 특권이라는 말이다. 진보와 보수는 선과 악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본성을 추구함은 기본으로 하면서 그 사고의 방향성을 비교해 보라는 의미로 생각한다. 따라서 진보든 보수든 약자를 배려하는 평등의식이나 측은지심,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의식은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일반적으로 왜 보다 보수적으로 변하는가? 민주주의의 역사가 긴 선진 자유국가에서도 이런 등식은 성립하는가? 물론 선진국에서도 나이 듦과 보수화는 조금은 일반적인 현상이나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진보적 정치관 또한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나이로 진보와 보수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그들에게는 이미 의미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이유로 나이 듦과 보수화가 비례한다고 할까?

우리의 기성세대는 역사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온 몸으로 겪은 세대다. 해방과 전쟁, 서로를 죽이고 죽임을 당한 비극의 역사와 함께 4.19, 5.16, 유신 독재, 군부 독재를 거치면서 쟁취한 자유의 소중함도 알지만, 한편으로는 폭압에 말 못하고 주눅 든 삶을 살아 온 억울한 세대다. 비겁하게 숨죽였던 것에 대한 부채의식 또한 있지만, 먹고 살아야 가족을 살릴 수 있었던 순응이 일상이었던 삶을 살았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주류에서 멀어지고, 한번 떨어진 나락에서는 다시 일어 설 기회가 없던 그런 삶을 살면서, 안정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뼈 속에서부터 느끼며 살아 왔다. 가정의 편안한 삶과 사회의 안정이라는 가치는 이렇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그런 이념은 보수의 일반화로 기성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이제 서야 나이 들어 안정이라는 편안함을 맛보고 있는데, 좋든 나쁘든 변화는 그들에게 두려움에 다름 아님을 이해하여야 한다.

또한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엄청난 노력으로 소위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너무 급속도로 이루어진 발전은 많은 부작용을 나았지만, 그 시대의 주역인 기성세대는 그 부작용 또한 그들 생활의 일부로 고착화되어 당연하게 여긴다. 과정의 정당성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천민자본주의, 능력보다는 학벌 위주의 사회, 지연, 학연 혈연 등의 연줄 문화, 고속 성장에 따르는 심화된 빈부 격차와 무시되는 약자들의 인권, 속도와 능률이라는 미명 아래 행동과 사고의 통일을 강조하는 획일의 시대를 살아 온 우리는 그 시대정신의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나 개선을 위한 노력보다는, 그런 부조리의 개선을 위한 정책들이 몰고 올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서 늘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영화 1987에서처럼 그 시대의 모순에 진취적으로 투쟁한 동세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세상의 모순을 바꿔 보고 싶다는 생각이나 그런 희망을 갖고 있음도 사실이다. 우리가 몸으로는 비록 순응했으나 마음으로는 저항했던 그 시대의 부조리가 아직 우리의 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깊은 뿌리는 우리의 자식들 젊은이들에게만 해결을 맡기기에는 너무나 깊어 우리 기성세대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그 해결은 너무나 힘들고 요원하다. 우리 세대의 끝자락에서도 슬프지만 그 썩은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이제 남은 삶이 많지 않다. 우리 삶의 가치는 자식의 행복과 함께 있다. 우리는 옛날에도 그러했듯이 자식을 위한 일에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우리의 아이들을 부조리가 만연한 세상에 남겨두고 노년을 편하게만 보낼 것인가? 정의롭지 못한 사회, 공평하지 못한 세상, 기회가 균등하지 못한 세상의 피해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우리의 자녀,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두려울 것이 이제는 없다. 노후 대비가 어려움 중 하나이겠지만, 그래도 많은 기성세대들은 젊음과 삶의 희생의 대가로 자녀들보다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는 이들이 많다. 또한 동시대의 많은 앞서 간 사람들의 덕으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사회 참여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다.

기성세대가 수구의 상징일 수는 없다. 나이 듦이 보수의 아이콘은 아니다. 삶의 안정을 바탕삼아 부조리의 혁파에 기성세대가 자신 있게 나서자.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나누어 주자. 이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기성세대 우리의 몫이며, 시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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