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부 (한국공무원문학협회 사무국장)

단풍이 절정인 가을이 깊어가는 가을날, 한국공무원문학협회에서는 가을철 문학기행을 실시하였다.

새벽 6시 30분에 박영춘 고문님, 김풍배 감사님, 민형익 이사님을 모시고 서산을 출발, 8시 30분에 한국공무원문학협회 정승열 회장님과 회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대전역 동 광장에 도착하였다. 우리 회원 18명은 주식회사 동방투어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옛 대통령들의 별장이었던 충북 청원군 문의면에 위치한 청남대로 향했다.

“가을산은 못사는 친정집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듯이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길가의 코스모스는 서늘한 기온을 타고 울긋불긋 피어 지나는 이를 반기고, 들판엔 황금물결이 넘실거리는 풍요의 계절이다. 그리고 가을은 누군가 그리운 사람을 더욱 그리워지게도 하는 슬픈 계절이며, 인생을 음미하게하고 인생의 시작과 끝을 알리게도 한다.

어느덧 버스는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 역대 대통령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청남대를 거쳐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향했다.

속리산면 법주사로에 도착하여 큰 길 옆에 있는「동림」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식식사를 마치고, 단풍색깔 만큼이나 노랗게, 빨갛게 물들고, 높은 가을 하늘처럼 한껏 부풀린 속리산 세조길을 지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유력하다는 법주사에 도착하였다.

속리산은 열 번을 와도 백번을 와도 좋은 산이다. 웅장한 산세가 천의 얼굴을 가졌으니 속리산만큼 볼거리가 많은 산도 드물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속리산 법주사는 속세를 떠난다는 뜻처럼 역사가 깊고도 깊다.

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는 553년 (진흥왕14년)에 의신(義信)스님이 창건하였고, 그 뒤 776년 (혜공왕 12년)에 진표(眞表)율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1,500년 불교문화의 숨결을 간직해온 법주사는 우리나라 유일의 목탑팔상전과 통일신라 조각의 유려함으로 손꼽히는 쌍사자 석등과 석연지의 국보 3점과 팔작지붕의 2층 전각인 대웅보전 등 보물 12점, 지방유형문화재 23점 등 역사문화의 보고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다는 유서 깊은 사찰임에는 틀림없었다.

법주사는 이렇게 역사문화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세계문화 유산』에 반듯이 등재되길 기원하면서 상큼한 가을바람에 은은한 솔향기가 묻어난다는 '정이품송' 앞에 도착하였다. 오늘 문학기행에 동참한 모든 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800살의 노송이 쇠파이프 지지대로 떠받히고 있는 우뚝 솟은 정이품송의 모습에서 갑자기 세월의 서글픔과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조선 7대 왕이었던 세조는 재위 10년 음력 2월, 국태민안을 빌고, 요양을 위하여 속리산을 가다가 길목에 서 있는 소나무에 임금님이 탄 가마에 걸릴 것 같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다고 하니 이 얼마나 영특한 나무인가.

그리고 한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내려 임금님 일행이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 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기특한 소나무에게 세조는 󰡐정이품(지금의 장관급)󰡑를 하사 하였다고 하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얼마 전에 끊어진 한남금북정맥을 93년 만에 연결하였다는 보은 속리산 관문인 말티재 마루금을 복원하고 동물의 이동통로를 설치한 준공식을 가졌다고 한다. 속리산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은 1924년 일제 강점기 당시 끊긴 한남금북정맥(보은 속리산에서 안성 칠현산) 중 말티재 마루금을 잇는 사업을, 속리산 자연생태계의 연속성을 유지회복하고 백두대간 속리산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추진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인상 깊었던 한국공무원문학협회의 가을철 문학기행에서 성숙의 탑에 또 하나의 추억을 쌓는 기회가 되었고, 나의 인생노트에도 아름다운 기록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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