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임 전 (주)튀니지 대사 / 서산부석사관음상의 눈물 저자

5.11일 인터넷 매체 “뉴시스(Newsis)“는 문화재 환수운동 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민) 등이 서산 부석사 관음불상을 즉각 일본에 돌려주라고 주장했음을 보도했다. 또한 이들 단체가 다음날 ‘대마도 불상 반환 촉구’ 집회를 열고 1만 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 법무부, 외교부, 문화재청에 제출하고, 6월 초 간논지를 찾아가 절도행위 사과문을 전달한다는 계획임을 보도했는데, 12일 예정대로 이 단체는 외교부 정문 앞에서 ‘대마도 불상 반환 촉구’ 집회를 열고 불상의 일본 반환을 촉구했다.

이에 부석사 불상의 향방과 관련된 혼선을 피하기 위해 문화재 환수문제의 소위 전문가로 알려진 유명인사의 무책임한 주장을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 인도주의적이고 도덕적인 양심에 입각해 불상을 지체 없이 간논지로 반환해야 한다....엄연히 절도범들이 훔쳐온 불상을 그냥 먹겠다는 게 정상적인 국가인가. UN 가입국으로서 할 짓인가. 유네스코에서 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당장 돌려줘라.“(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민) 주장. 5월 11일 뉴시스 보도 인용)

우선 이들은 한일관계, 인도주의 도덕과 양심, 유엔, 유네스코 등 중요한 공적가치를 나열하여 언론에 호소하고 있는데,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반환목적이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서”라는 위험한 발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 왜 하필 우리가 부석사 불상을 반환해야 하는가? 일본이 불상을 한국에 반환해야 한다는 생각은 할 수 없는 것인가? 문화재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국내외의 경멸을 자초한 부질없는 짓이었는가는 이집트의 과거 예에서 잘 볼 수 있다. 19세기 풍전등화 같은 국가의 운명에 노심초사한 나머지 이집트 정부는 서구제국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벨리스크를 런던, 파리, 뉴욕에 기증했지만 결과는 이집트의 유구한 역사이자 고귀한 정신을 상징했던 위대한 문화재를 영원히 상실한 것이었고, 예정된 코스에 따라 이집트는 영국의 식민지로의 전락을 피할 수 없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불상을 절도범들에 의한 절도품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불상을 한낱 물건으로만 본 것인데, 더구나 이 불상은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들은 이 문제의 진정한 주인공인 관음불상과 불상을 제작하여 부석사에 봉안했던 서산 부석사와 주민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이들은 일본으로 즉각 돌려주라고 주장하기 전에 부석사나 서산 시민들과 의논을 했는가? 관련인들의 양해 없는 해결은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최근의 한일관계에서 배우지 못했는가?

불상, 즉 문화재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후세를 위해 남겨진 선조의 유산으로서 과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현재의 우리에게는 과거를 기억하는 물증이다. 우리는 이러한 유산을 통해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공유한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을 통해 현재에 재생되며 우리의 현재와 관계한다. 이 불상은 고려말 고단한 삶을 살았던 서산인들과 왜구의 침구에 신음했던 우리 모두의 역사를 현재에 되살려주는 강력한 물증이다.

이 불상은 고려말 극락세계를 염원했던 서산인들의 신앙심으로 부석사에 영원히 봉안되었지만, 고려말 왜구에 의해 약탈되었다. 왜구에 의한 약탈이 아니라면 이 불상이 대마도 왜구의 후손이 세운 간논지에 존재했던 일을 설명할 수 없다.

“500여년 전 왜구가 부석사에서 약탈한 정황은 있지만 결정적인 문헌 증거가 없다. 고려시대의 부석사와 현 부석사가 동일한 사찰인 지도 확실하지 않다.”

이들은 이렇게 강변하고 있지만, 문헌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만으로 문화재 약탈이 입증된 다수의 국제적 사례가 있음을 알고 있는가? 더구나 고려시대의 부석사와 현 부석사가 동일한 사찰임을 의심하는 것은 불상과 부석사의 관계를 끊어 불상을 연고 없는 문화재, 이른바 아무도 찾지 않는 “고아 문화재(orphan cultural property)“로 만들려는 발상이다. 이는 문화재의 또 다른 훼손행위이다. 이러한 무책임한 주장을 하기에 앞서 이들은 오늘날의 서산부석사가 고려말 처음 관음불상이 안치되었던 그 서산 부석사가 아니라는 증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부석사 불상은 서산의 과거역사이자, 왜구의 침구에 의해 피폐해진 고려의 역사를 환기해주는 강력한 물증이다. 기억은 시간과 함께 흐려지고 변질되다가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소멸된다. 그러나 동일한 과거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기억은 집단기억이 되면서 개인의 기억보다 더욱 정확하고 더욱 힘차게 살아남아 후대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지나간 과거는 다시 오는 미래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불상은 적당히 넘겨줄 수 있는 흘러간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마도 주민들에게도 이 문제가 그들에게 편리한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불상은 대마도 사람들에게는 잊고 싶은 그들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그들의 현재의 삶에 대한 뿌리를 성찰하게 만드는 계기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이 불상이 일본 전문가들에 의해 왜구의 약탈물로 결론이 모아진 직후 1974년 불상을 국가중요문화재로 등록하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후안무취를 보이고 있다. 우리의 문화재제자리찾기가 이러한 일본정부의 입장에 동조할 뿐 아니라 사과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부석사 불상문제의 해결은 진정한 소유자에게 환수시키는 것이다. 일본정부와 대마도 측에서 진정한 소유권을 입증하는 노력이 해결의 첫 단계이다. 또한 해결은 반환만이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영구대여, 복제품 기증, 공동소유, 공동관리, 교환전시 등 다양한 방식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 없이 무조건 반환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묻지마”식 해결방법이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문제가 수백년 전에 일어난 일인 만큼 오늘날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세월이 모든 것의 약은 아니다. 시간은 없는 소유권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화재 문제에서 국제사회의 공통된 법리이다. 수백년 전 왜구의 약탈은 공소시효 등의 이유로 법적으로 구제 받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는 80년 전에 저질러진 나치약탈의 문화재는 환수되어야 한다는 것이 확립된 관행이다. 또한 수 백년 전 전시 약탈된 문화재의 반환문제 역시 꾸준히 논의되고 있음을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일예로유럽 종교전쟁의 와중인 1712년 빌메르겐(Villmergen) 전쟁에서 쥬리히에 문화재를 약탈당한 스위스 셍갈 주(Zurich, Saint-Gall, 모두 당시는 각자 독립 공국이었음)는 1996년 당시 약탈된 문화재가 쥬리히 박물관에 존재함을 발견한 즉시 쥬리히를 상대로 협상을 벌려 2006년 일부 문화재를 회수했다.

영국은 1476년부터 노르만디 바요 직물 박물관(Bayeux Tapestry Museum)에 소장된 프랑스 문화재 바요 카펫의 반환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복왕 윌리엄의 전투를 묘사한 70m에 달하는 이 카펫은 윌리엄의 프랑스 부인 마틸다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이다. 약탈의 직접적 증거는 없지만, 최근 이 카펫이 영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속속 나옴에 따라 영국 의회도 이 카펫의 반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론 프랑스의 완고한 태도에 비추어 반환의 현실성은 크지 않겠지만, 국제사회는 교섭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에게는 타산지석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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