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태안환경연합 이사 이성춘
서산태안환경연합 이사 이성춘

여름의 끝자락, 동료들과 대산읍 벌천포 해수욕장을 산책하고 있었다. 푸르고 맑은 파도와 하얀 조약돌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한적한 농어촌 바닷가에서 느끼는 평온함이었다. 해변 길을 걷다가 저 멀리 산 정상에 팔각정이 보여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급경사지를 올라 도착했다.

바닷가 주변은 아름다웠다. 바다 한가운데는 모래톱이 보였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어떤 물체인지는 몰라도 나무토막처럼 생긴 것들이 하얀 배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저게 뭐지. 머리를 바다 쪽을 향해 들어 누워있는 물개 같은 놈들이 7~8마리가 떼를 지어 놀고 있었다. 이따금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이동하는 모습이 아주 평화롭게 보였다. 점박이물범이었다. 순간 지난 날들이 전광석화처럼 스쳐갔다. 갯벌, 조력발전소, 국가해양정원 등 수많은 갈등이 이 놀라운 생명체로 귀결되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몇 마리가 살고 있었던 것인지 점박이물범 가족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비로소 나는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끄는 생명체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깨달았다.

그렇다. 갯벌이다. 바다였다. 생명이다. 태초에 생명의 싹이 트고 수억 년이 흐르면서 다양한 생물의 삶의 터전이 되어온 바다, 어디 생물만 그러했겠는가? 이곳은 수많은 사람의 삶과 죽음이 겹쳐지고 이어져 내려온 억겁의 터이며, 수많은 생명을 먹여 살린 보물창고였다.

내 마음속에 멀리 떨어져 있던 가로림만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가로림만은 2007년 국내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지금도 흰발농게, 붉은발말똥게, 거머리말, 점박이물범 등이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점박이물범은 1~3월에 중국 보하이만 · 랴오둥만 유빙 위에서 새끼를 낳고, 봄에 남하를 시작하여 산둥반도와 백령도, 소청도에서 여름을 지낸 후 늦가을까지 다시 보하이만 · 랴오둥만으로 이동하는데 특히 가로림만 물범은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이곳 가로림만이 생태계가 정교하게 유지되어 있어 생태환경의 지표 생물인 셈이다.

가로림만은 앞으로 국가해양정원으로 변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자원으로서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무엇보다도 갯벌 보존의 철학을 마음속에 심어주고 자연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곳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 주민들이 바라는 점 등을 듣고, 향후 주민들이 서로 신뢰 속에서 협력하고, 생태관광과 주민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하는데 기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후손들에게 현재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를 물려주어야 한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갯벌,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나 또한 그 보전과 유지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람이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양심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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