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㉒

한광석 신부(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해미국제성지)

명절 전에 아버지 집을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미사를 하고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덕분에 과식을 피하고 모처럼 사람과 인터넷과 핸드폰도 신경 쓰지 않으며 속으로 나는 자유인이다!”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계속 홀로 있으려니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가는데, 지난 잘못이 떠오르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그때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까? 내가 왜 그 정도 밖에 되지 못했을까?” 내 속 좁음과 미성숙함으로 주변 분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들이 스쳐갔습니다. 물론 그 상황이 다시 온다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내 모습이 그려지지만요. 나름 최선을 다한 상황이었고, 좀처럼 변할 수 없는 저의 한계 때문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데, 뒤돌아보면 저는 그저 본성대로 살며 실수하는 동물로만 느껴져서 좀 불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간의 실수와 잘못에 대한 이야기는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작가 메난데르가 같은 잘못을 두 번 범하는 것은 현명한 사람의 행위가 아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생각이 기원전 2세기 로마의 정치인이자 작가인 키케로의 실수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오직 바보만이 자신의 실수를 지속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1세기에 살았던 정치인이자 철학자인 세네카도 실수에 집착하기보다는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종교박해가 끝난 후,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신학자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인간적이지만, 오만함으로 실수를 지속하는 것은 악마적이다고 정의합니다.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신을 닮을 모습과 반대된다는 것이죠.

여기서 영어로 악마’(devil)를 뜻하는 단어는 라틴어 디아볼루스’(diabolus)에서 왔는데, 그 어원은 그리스어로 비방하다또는 거짓으로 고발하다라는 동사에서 기원합니다. 이는 악의적이거나 기만적인 존재를 지칭하며 유혹, 속임수, 악과도 관련이 있죠. 그래서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악마나 사탄과 동일시하며, 인간의 가장 큰 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격언들에 따르면, 인간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기에 실수를 통해 배우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유일한 진짜 실수는 교훈을 얻지 못한 실수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 해 줍니다. 우리가 천재 물리학자로 인정하는 아인슈타인도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에 관한 첫 번째 논문을 발표했을 때, 정적인 우주를 유지하기 위해 우주 상수를 포함시켰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팽창하는 우주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방정식에 우주 상수를 포함시킨 일을 인생의 가장 큰 실수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도 실수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이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점은 실수를 고집하지 않고 기꺼이 인정하고 바로잡으려 했다는 것이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깊이 성찰하는 작업을 통해 이뤄지기에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서 위선과 가식으로 자신을 치장해온 사람은 더욱 어렵기에 악마적이라는 무서운 표현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의 한계를 가진 실수에 너무 불편한 내가 되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이젠 좀 뻔뻔하고 싶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이지만 변할 수 없는 것도 있으니 위축되지 말되, 나와 이웃에 피해를 주는 습관적 실수에 대해선 과감히 고백하고 바꿀 용기도 가진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멋지게 바꿔갈 수 있는 주인은 지금, 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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