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㉑

한광석 신부(해미국제성지)

사기 천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이란 자극적인 기사를 얼마 전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속이고 또 속이는 세상이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법조인들은 형량이 낮고 범죄 수익 환수가 어려운 탓에 사기꾼이 늘어난다고 분석합니다. 크게 한건 하고 들어갔다 나오는 게 손해가 아니기에 이런 현상이 계속 된답니다. 연령별로는 20대 사기꾼이 26.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정상적으로 일해서 돈 버는 것으론 미래가 보장되지 않아 이런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굳이 보이스피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눈을 뜨고 있어도 코 베가는 세상입니다. 저 같은 신부에게 하느님을 두고 맹세한다!”고 장담하던 신자의 말도 결국 거짓인 것을 확인하면서 씁쓸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변한 이유가 뭘까요? 어느 조사기관이 수도권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성지수 조사에서, 3분의 1이 친구나 부모를 계속 속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TV에 나오는 지도층들이 거짓말을 잘 하기에 우리 사회에서 정직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직에 대한 점수는 그렇게 낮은데, 정의에 대한 점수는 아주 높았다는 것입니다. 정직이 자신에 대한 잣대라면 정의는 타인에 대한 것인데, 자기는 정직하지 않으면서 남의 거짓과 잘못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읽을 수 있죠.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곧 출세하고 성공하는 데에 나와 가족만 있지, 이웃이 빠져 있습니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 정권획득으로, 국민의 행복과 공동선이 최우선에서 밀려있듯 말입니다. 이렇게 성공한 이들은 이웃을 밟고 올라섰기에, 성공한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가 힘들어 지는 것 같습니다.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동안에 진짜 삶은 중단 된다는 독일의 안셀름 그륀 신부의 말에 고개가 숙여지는 이유입니다.

한 가지가 거짓이면, 모든 것이 거짓이다’(Falsus in uno, falsus in omnibus)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가지 면에서 부정직하거나 진실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면, 모든 것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죠. 특정 사건이나 인물과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증인의 신뢰성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적용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17~18세기 영국에서도 증인이 이전에 거짓말로 증언을 한 적이 있는 경우, 증인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무적인 추정을 했다고 합니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렸던 미식축구 스타 OJ 심슨사건에서도 당시 판사는 이 원칙을 적용하여 증언의 한 중요한 부분에서 고의로 거짓을 한 증인은 다른 부분에서도 불신해야 한다고 말했다죠.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를 펴낸 김정일 원장은 환자들에게 사람을 믿느냐?”고 매번 질문하는데, 많은 사람이 안 믿는다!”고 대답을 한답니다. 거짓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타인과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않고, 사람들과 엮이는 걸 두려워하는 점에서 온 지역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물론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선의의 거짓말은 예외지만요. 이런 거짓이 난무하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혼자만 부와 명예를 차지하는 성공이 아닌, 함께 잘 살아가는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그걸 위해서 자기만의 게임, 공간, 세상에 고립되어 있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상처받고 성장하는 법을 배우는 것, 결국 선의의 사람들과의 건강한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것, 그것이 힘들지만 지금이라도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정직 천국인 대한민국에서 어른들을 본받아 정직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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