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주도형 사회분위기와 공무원들의 열정이 넘치는 헌신이 있어야

박두웅 전)서산시대 국장
박두웅 전)서산시대 국장

순천은 대도시를 꿈꾸지도 따라 하지도 않는다. 정원박람회가 그랬듯 우리 도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제대로 집중하고 투자한다면 온갖 부작용을 만들어내는 수도권 일극체제의 대한민국 판도가 분명히 바뀌게 될 것이다.”

노관규 순천 시장은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폐막식을 앞두고 순천의 다음 목표는 순천을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박람회 이후 굴뚝 없는 친환경 사업인 애니메이션기반 새로운 미래 도시를 창조하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지난 4월 화려한 튤립 개화와 함께 시작한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7개월 대장정 끝에 1,000만에 육박하는 관람객을 모으며 큰 성공을 이뤘다. 전남 순천은 짧은 준비기간에도 정원으로 도시의 판을 바꾸며 전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수익금 목표액 253억 원도 개장 128일 만에 달성했으며 1026일 기준 330억 원을 확보해 목표액 대비 129%를 이뤄냈다. 무엇보다 900만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오며 지역경제에 불을 지폈다. 박람회장 내에서는 35개 수익사업시설에 지역 소상공인이 참여하는 상생모델이 만들어졌고, 도심 상권에도 훈풍이 불었다.

관람객들이 국가정원 인근 상권은 물론 원도심까지 퍼져나가며 재료 소진으로 조기마감 문구를 써 붙인 식당도 찾아볼 수 있었다. 웃장 국밥골목은 점심시간 식당 밖으로 30m가량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며 전통시장 매출은 2배에서 5배까지 증가했다.

박람회 경제효과는 인근 도시까지 확대됐다. 광양시, 보성군은 발빠르게 정원박람회장을 경유하는 시티버스를 운영했고, 여수도 박람회 대비 관광종합대책반을 준비했다. 그 결과 여수·광양·보성·구례·고흥 등 방문자가 지난해보다 평균 10%p 이상 증가하는 등 정원박람회가 제대로 인근 지자체에게까지 낙수효과를 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순천을 배우기 위한 벤치마킹 행렬도 이어졌다. 국회와 지방의회, 각종 위원회, 중앙부처, 교육청, 교육기관, 대학, 해외 대사관과 공공기관 등 현재까지 전국에서 504개 기관이 찾았고 그중 지자체는 197개에 달한다. 서산시도 그중 한 지자체였다.

그 파급효과는 투자유치로 이어졌다. 대기업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포스코와이드, 포스코리튬솔루션 등 유수 기업들이 순천에 8,600억 원 규모 투자·유치를 결정했다.

그러다보니 중앙정부도 순천에 힘을 실어줬다. 순천 소재 주요 산단이 6,000억원 상당의 거점산단 경쟁력강화 사업지로 선정된데 이어 전남에서 유일하게 국립순천대학교가 글로컬대학 30 예비명단에 올랐다.

당초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23정원박람회 생산유발효과로 15,926억 원, 일자리 창출 효과는 25,149,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7,156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 추정치를 훌쩍 뛰어 넘었다. 박람회 자체 성과를 넘어 기업·정부 투자와 도시브랜드 향상 등 후광효과를 감안한다면 그 성과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부러우면 진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하지만 순천시를 바라보며 우리 서산시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서산시에게도 순천시가 걸어온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2명의 대통령이 가로림만국가해양정원을 대통령 공약으로 내걸었다. 도지사와 시장 또한 공약했다. 순천만, 태화강과 같은 국가정원이 아닌 바다와 갯벌을 기반으로 하는 제1호 가로림만국가해양정원이 그것이다.

지리적으로는 수도권에 근접한 서산이 순천시보다 더 유리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여기에 프란치스코 로마교황이 방문한 해미국제성지,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천수만과 가로림만국가해양정원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L자형 생태광광도시의 면모를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인근 태안군과 함께 산, , 바다가 어우러진 새로운 개념의 국가해양정원의 꿈은 그렇게 시작됐다.

서산시대 초청 김경집 교수 사회로 서산이 묻고 순천이 답하다토론회에서 모세환 순천시지역공동체활성화센터 대표는 만일 가로림만국가해양정원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진다면 순천시에게는 강력한 경쟁자가 생길 것이라며 어쩌면 순천시가 서산시에 밀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후 서산시는 전·현직 순천시장을 초청해 토론과 특강을 갖기도 했다. “생태가 밥 먹여준다는 허석 전 순천시장의 강의는 생태도시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민선8기 들어서 시장과 수백 명의 서산시 공무원이 순천만국가정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 8월에는 충남시장군수협의회(회장 박상돈 천안시장)에서 김태흠 충남지사와 15개 시장군수가 가로림만 국가해양생태공원 신속추진 촉구 건의문을 채택 해수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8만 시민과 220만 도민의 염원이자 윤석열 대통령 대선공약인 가로림만 국가해양생태공원 조성사업의 타당성조사 통과를 위한 예산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어 본연의 사업추진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다. 당초 2715억에서 2448, 그리고 다시 1577억으로, 그리고 지금은 1236억으로 쪼그라들었다.

서산시의회 제289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서산시 관계자는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위해 점수가 나오지 않는 부분을 축소하다보니 예산이 줄게 됐다“(축소된 사업들은) 서산측의 경우 예술섬 웅도(119), 오지리갯벌복원사업(73), 구도 화합의 다리 조성사업(150)와 태안 지역 힐링숲 율도(67), 등대정원(92) 이라고 설명했다.

아쉽고 답답한 국면이다. 서산시와 태안군에 총 1200억의 예산이면, 지자체별 예비타당성 면제조건인 500억에서 겨우 100억이 넘는 금액이다. 굳이 예비타당성 통과에 목숨을 걸 명분이 이제 사라지고 없다.

도대체 순천시와 서산시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천학의 도시 순천시에서 흑두루미는 보배중의 보배. 흑두루미는 9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순천시의 부의 원천이기도,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을 만든 원천이기도 하다.

반면 매년 3000~40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찾는 서산시에서 흑두루미는 천덕꾸러기다. 일부 조류학자와 동물보호가, 그리고 환경단체의 관심대상 일뿐 주민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한다. 먹이나누기 현장 출입금지 푯말은 훼손되기 일쑤다. 천수만 철새도래지와 가로림만갯벌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 가치에 대해 관심과 참여는 극히 일부 시민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있다.

1992년 만 해도 순천만은 버려진 땅이었다. 당시 순천시의 무관심 속에 무단 투기한 쓰레기가 넘쳐났다. 개발중심 행정도 한몫했다. 순천시 동천하도 정비사업을 계기로 1993년부터 민간 업체의 골재 채취 사업이 시작됐다. 순천만 갯벌 약 1아래에는 미세한 모래가 쌓여 있는데, 순천시가 이를 채취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준 것이다.

한 마을 주민의 제보로 골재 채취 사실이 지역 시민·환경단체에 알려졌다. 이들은 환경영향평가 등을 요구하며 사업허가 취소를 촉구했고, 1996년 전문가가 최초로 생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희귀한 철새와 다양한 염생식물의 존재가 보고되었고, 갈대숲이 갖는 정화기능이 알려지면서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가 재조명받게 됐다. 순천만의 가치를 인식한 시민들은 순천만갈대제를 개최하였고, 순천만살리기에 나서게 됐다.

시민들의 참여와 목소리가 행정을 바꾸고, 정책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결국 1998년 순천시는 사업허가를 취소하고 2년 뒤인 2000년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조성사업에 착수했다. 20031월에는 해양수산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 고시된 데 이어, 20061월 국내 연안 습지 최초로 순천만 갯벌(28)이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이후 순천만은 한국관광공사 선정 국내 최우수 경관 감상형 관광지로 선정됐으며, 20086월 국가 지정 명승 제41호로 이름을 올렸다.

순천시민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순천만 주변 지역 7.73을 생태계보존지구로 지정해 난개발을 막고, 생물 다양성을 위해 전봇대 282개도 뽑았다. 철새들의 먹이 활동을 감안해 매립지 농경지 둔치에 습지를 복원하고 무논 습지도 조성했다.

순천만 조성이 처음부터 주민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순천만에서 어로 활동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습지에 인접한 11곳 마을 주민 대부분은 2003년 순천시가 순천만 일대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고 하자 갈대를 불태우며 강하게 반발했다. 2006년 람사르 습지에 등록할 때와 2009년 생태계보전지구를 지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순천시 공무원들이 나섰다. 그동안 소속정당이 다른 3명의 지자체장 모두 순천만 생태복원의 가치를 이어 실천했고, 생태계보존지구 지정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사업설명회대신 사업설득회라고 현수막을 걸게 한 간부직 공무원의 결단도 후일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예 설득회를 하겠다는 의지가 오늘의 순천시를 만드는 큰 힘이 됐다. “동네 개들이 우체부에게는 짖어도 순천시 공무원에겐 꼬리를 흔들 정도였다고 주민들은 당시 설득 작업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의 헌신적 노력을 회상한다.

25년의 공직생활을 개발과 보존의 갈등 속에서도 순천만을 자연과 사람에게 돌려주는데 노력해 온 최덕림 국장은 생각하는 공무원이 세상을 바꾼다는 철학으로 행복한 시민을 위해서는 고독한 공직자가 되라고까지 말했다.

모세환 대표는 순천만살리기 성공요인에 대해 순천시민들은 생태보전의 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다. 지역사회 저변에 시민사회의식이 충전되어 있었다고 보면 된다. 순천의 힘, 동력은 시민, 곧 주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설명했다. 모 대표는 순천시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 순천만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갈등이 세게 부딪히고 나니 어느새 사회갈등 해결 능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답은 시민의 힘이었다. 그렇다면 생태수도 순천의 시민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모 대표는 책이 순천시를 만들었다고 단언했다. 순천은 인문학의 도시다. 도시 곳곳에 작은 도서관이 넘친다, 부모와 아이들은 작은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한다.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일은 사회의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들에게 정당한 성장의 권리를 보장하고 꿈과 희망을 키울 기회의 평등을 확대해 주어야 하며, 가능한 한 최선의 창조적 성장 환경과 최선의 봉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대한민국 제1호 기적의도서관이자 어린이 전용도서관인 민과 관이 함께 운영하는 순천기적의도서관 설립목적이다.

순천시는 원도심 재생에 나서면서도 우선적으로 식당을 매입해 복합문화공간 한옥글방을 만들었다. 시민들의 요구에 행정이 답했다.

모 대표는 한 사서직 공무원이 추천한 책으로 공무원과 주민이 함께 읽고, 토론한 결과가 순천시 탄생 700년 기념공원을 만들었고, 그의 1000통의 편지가 세계적인 정원디자이너 찰스젱스를 불렀다도서관의 힘에 대해 설명했다.

사서직 공무원의 편지에 감동한 찰스젱스의 작품으로 유명한 순천국가정원 랜드마크에 해당하는 달팽이처럼 돌고돌아 먼 길을 올라가도록 만든 정원은 “1명의 휠체어가 올라가기 위해서 99명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가치를 담았다.

모 대표는 순천의 아이들은 이를 배우며 자란다고 덧붙혔다. 시민이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다. 모 대표는 순천이 자랑하고 싶은 것은 수백 명의 자원활동가로 민민거버넌스가 활발하다. 그를 기반으로 민관거버넌스가 작동한다. 오늘의 순천시를 만들어 낸 배경에는 주민주도형 사회분위기와 이에 함께 한 헌신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공무원들이 있었다며 순천시 성공의 뒷이야기를 전해줬다.

토론회를 마치며 김경집 교수는 한 도시의 동력은 그 도시의 철학, 정체성, 방향을 결정짓는 사회적 인격성에서 비롯된다고 결론지었다. 서산시의 사회적 인격성은 어떤 수준일까.

분명한 것은 순천시와 서산시의 차이는 정치력, 행정력 차이에 앞서 도시의 정체성, 그리고 도시가 갖고 있는 철학의 차이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우리 서산시의 도시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도시의 철학은 무엇일까.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도시철학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오히려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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