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대한민국 생태관광의 메카이자 소중한 자연유산

공연, 체험, 먹거리 부스.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축제 레파토리 프로그램들이다. 한 공간에 모여 일상의 따분함을 떨치고, 사람 구경은 덤인 그저 그런 축제들이 지역마다 개최되고 있다.

서산 천수만에서 개최되는 천수만 철새기행전은 어떨까? 올해는 지난 1028()~29() 양일간 서산버드랜드와 천수만 일원에서 개최됐다.

행사장에 들어서니 몽골 텐트에 체험 부스들이 마련되어 있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어린이들이 이런저런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솟대만들기, 솔방울공예, 나무시계만들기, 철새캐릭터만들기, 텀블러만들기, 철새조명등 만들기 등이 진행되고 있다.

생태체험프로그램으로 방사행사, 생태탐방로 걷기, 새집만들기, 버드카빙 체험, 조류관찰 체험 등이 진행되고 천수만 탐조투어는 하루 3회 총 6회 진행됐다. 탐조투어는 11월 말까지 매주 주말 운영된다.

지역주민 참여프로그램으로는 천수만 농촌체험, 간월도 바지지락 캐기 체험, 창리 좌대낚시 체험 등이 진행됐다. 행사장에는 기타 키다리 삐에로, 민속놀이 체험 등이 있고 전시관 로비에서는 마술공연이 어린이 관람객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행사관계자는 총예산은 9천만 원으로 전문업체 용역으로 진행됐고, 양일간 입장객은 3,502명으로 생태체험프로그램 1,580, 공연(마술 등)2,596, 경연(그림그리기 등)379, 공예체험(솟대만들기 등)6,016, 주민참여프로그램에 2,093명으로 연인원 12,664명이 행사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천수만 철새기행전 탄생 배경

 

1980년대 천수만은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국내 최대의 쌀 생산지를 얻었지만 소중한 갯벌을 잃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또 하나의 선물이 뒤따라왔다. 방조제를 통해 만들어진 광활한 담수호와 농경지가 철새들의 낙원으로 변한 것이다.

가을이면 황금 들녘으로 변하고, 가을 추수의 콤바인 소리가 시작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시베리아부터 내려오는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생태관광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등장했고, 더불어 천수만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가창오리 수십만 마리가 군무를 이루자 전국의 철새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신기한 풍경도 선사했다.

그러던 중 200010, 약물에 의한 가창오리 8천여 마리가 집단 폐사하는 사건이 천수만에서 발생했다. 방송과 신문 등 모든 매체에서 연일 집중보도하며 천수만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철새의 집단 폐사 사건은 사람들에게 천수만 철새의 생태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지역의 환경단체와 주민들도 환경생태에 대한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됐다. 짧은 기간, ‘철새 기행전 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시민들과 환경단체, 서산시가 하나 되어 새와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주제로 서산 천수만 세계 철새기행전이 탄생한 것이다.

서산버드랜드가 생긴 것도 이때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서산시는 2002년에 환경부 지원사업 공모에 나서 천수만 철새도래 생태 공원화 사업일환으로 서산버드랜드 설립을 계획했다. 서산버드랜드는 국비 106억 원, 도비 37억 원, 시비 110억 원 등 총 253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3차에 걸쳐 조성되었다. 1차는 2011년 철새 박물관(학습관)4D 영상관을 준공하였으며, 2차는 2012년 야외 공연장과 야생 동물 치료 센터, 3차는 2013년 철새 전망대와 탐방로 및 산책로를 준공하였다.

당시 천수만 철새기행전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외국 광학장비 업체가 스폰서가 되고 싶다며 연락을 해 온 적도 있었다. 미국 한 노부부는 천수만의 새들을 보기 위해 미국에서 한 달 이상의 휴가를 받아 몇 년째 천수만을 찾기도 했다.

철새기행전은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됐다. 철새는 서산의 복덩이라고 연일 매스컴들도 보도했다. 입장료 수입도 대단했지만, 탐조 관광객들이 서산에서 지출하는 돈만도 당시 금액으로 매년 45억 원 정도였다.

여기에 서산이 철새가 찾아오는 친환경 청정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알려지면서 간월도 어리굴젓, 6쪽마늘, 생강한과 등 농수특산물도 덩달아 불티나게 팔렸다. 특히 기러기 오는 쌀은 일반 쌀보다도 더 비싼 가격이었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전국 지자체 경영행정 혁신평가에서 서산시가 대통령상을 받았다.

한 해 두 해가 가면서 천수만은 전국에서 생태교육과 생태관광 벤치마킹할 만한 곳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사법연수원생, 대학교수들, 관공서의 필수 연수코스로 자리도 잡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투어 서산 천수만 철새기행전을 배우러 몰려들었다. 전국에서 철새를 주제로 한 환경축제, 그것도 민·관 협치와 협업을 바탕으로 이토록 성공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사례는 극히 드물었던 것이다.

 

# 천수만 철새기행전의 암흑기

 

20029월 지역 사회 및 NGO 대표와 조류 전문가는 세계적인 철새의 월동지인 천수만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천수만 철새기행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어 200210월 말~11월 말에 제1회 천수만 철새 기행전이 열렸다. 2004년에 국제 환경 학술대회가 동시에 열리면서 천수만 철새기행전에서 서산 천수만 세계 철세기행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덕에 천수만 철새기행전 사무국은 2007년에 탐조관광의 국제적 교류 일환으로 미국, 일본, 홍콩 등 7개국 초청하는 아시안 버드 페어를 천수만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호응이 매우 높아 성사는 당연한 것으로 인정됐다.

하지만 행정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서산시의 소극적인 대처로 아시안 버드 페어개최 약속은 지키지 못했고, 결국 다른 국가에서 아시안 버드 페어를 가져갔다. 그 행사에 서산은 주인이 아닌 객이 되고 만 것이다. 지금도 돌이켜 보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설상가상으로 현대에서 간척지 경작을 민간위탁하면서 낙곡이 없어지자 가창오리 등 많은 철새들이 천수만을 떠나기 시작했다. 군무로 명성을 떨쳤던 가창오리가 천수만을 떠난 것은 민간위탁 된 2009년 이후의 일이다.

2002년 철새 기행전 출범 당시의 천수만과 달리 2009년 이후 해가 갈수록 철새 개체 수가 감소하며 천수만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다 보니 농어촌공사 천수만사업단에서 간월호 물을 가둬 놓거나 모래 준설로 모래톱이 사라지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은 철새들의 안전을 위협했다. 모래톱은 철새들에겐 산란 및 서식지인데 그 터전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천수만 부활을 염원하는 시민들

 

천수만을 아끼는 시민과 마을주민들을 중심으로 천수만 철새를 보호하자는 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몇몇 뜻있는 시민들은 철새 먹이나누기에 나섰다.

그러나 천수만 생태관광의 부활을 꿈꾸던 시민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천수만 철새 관련 상표권이 등록료 미납으로 권리가 소멸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서산버드랜드사업소에서 20061013일부터 2007816일까지 등록된 철새기행전, 새와 사람의 아름다운 만남 등 87건의 상표권에 대하여 갱신등록 신청(상표권 등록료 미납)을 하지 않아 천수만 철새축제 관련 슬로건, 캐릭터 등의 상표권 87건의 권리가 소멸됐다.

당시 행정감사에서 서산시는 20121116일 등록된 철새 관련 캐릭터 가창오리, 두루미 등 20건의 상표권을 공유재산대장에 작성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행정의 난맥상이 지식재산권 권리 소멸이라는 참사를 빚은 것이다.

서산버드랜드사업소에서는 201511일 환경생태사업소에서 서산버드랜드사업소로 업무가 이관되면서 인수인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상표권 등록 여부를 알지 못했다고 변명해 시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결국 시 행정의 무관심과 천수만의 생태관광 활성화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이에 서산시는 서산버드랜드 활성화를 위한 연구용역을 시작했다. 201992일 서산버드랜드 전망대 1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시민들은 천수만의 생태관광 메카로 거듭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시 시민들은 다양한 탐조프로그램과 함께 서산버드랜드 주변 습지조성 서산버드랜드 단지 내 다양한 생태조형물 설치로 탐방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 관 주도에서 탈피해서 민관이 함께 하는 철새기행전 재운영 보다 적극적인 천수만 홍보마케팅의 필요성 등을 주장했다.

행정의 무관심과 천수만 생태관광 부활을 외치는 시민들과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던 2020, 천수만은 정부의 생태관광지역재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아 생태관광지역 지정박탈 위기에 놓였다. 철새먹이 부족으로 인한 철새 수의 감소, 여기에 행정의 무관심으로 지정철회라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정부의 생태관광지역 지정제도는 2013년 도입됐다. 정부는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된 곳에 대해 3년 주기로 지속가능 관광지 관리체계와 환경보전 등 4개 영역 28개 항목을 평가, 60점 이상을 받아야 재지정을 하고 있다.

서산시는 2016년 정부 평가에서 61.5점을 받아 재지정 지위를 유지했지만 2019년 평가에서 45.7점으로 재지정 유보 결정을 받았다. 당시 정부의 평가 대상 전국 12곳 중 60점 미만을 받아 재지정 유보 결정을 받은 곳은 불행하게도 천수만이 유일했다.

사태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시민들은 20203월 마을주민 등 17명으로 천수만생태관광추진협의회를 구성했다. 천수만이 생태관광지역에서 제외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절박한 심정이었다. 또 서산시와 서산시의회에 호소해 전액 시비 8600만 원을 투입해 정부의 평가 미충족 항목에 대비했다.

이러한 눈물겨운 노력은 2020 천수만 철새학교 철새와 함께하는 Eco-Cook 여행 창리 낚시공원 체험 등 생태 체험프로그램의 부활로 이어졌다. 또 시민들의 야생조류 충돌방지 스티커 부착 철새 먹이주기 밀렵 감시 등 다양한 환경 보전 활동도 전개했다.

기사회생이라는 말이 이 경우가 될 것이다. 결국 서산은 생태관광지역 3연속 재지정 및 국비 4,300만 원 확보라는 결과로 나왔다. 이에 서산시도 천수만의 생태성 유지 및 복원, 철새 먹이주기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노력에 철새들도 응답했다. 쇠기러기, 고니, 두루미, 독수리 등 철새의 종과 개체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국제적 보호종 흑두루미의 경우 2020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시베리아흰두루미, 천연기념물 제451호 검은목두루미, 캐나다두루미 등 희귀 두루미류도 함께 천수만을 찾았다.

시민들이 펼치는 철새 먹이나누기 운동에 이어 문화재청에서도 사업비 9천만 원을 지원해 흑두루미 먹이 약 20여 톤을 먹이로 제공하는 등 세상 사람들의 천수만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특히 202310월에는 2025아시안 버드 페어개최지로 천수만을 선정했다. 18년 만에 아시안 버드 페어개최 약속을 지키게 됐다. 앞으로 국제 학술대회, 국제탐조대회 등 굵직한 국제행사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생태관광지역으로 발돋음 할 계기가 마련됐다.

천수만은 서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랑하는 생태관광의 메카이며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이 소중한 자연유산이 한때의 잘못 생각으로 사라질 뻔한 적도 있었다. 다시 부활하는 천수만 철세기행전. 새와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욥기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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