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⑬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벼들이 마지막 결실을 맺어가는 시기에 황금 같은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모처럼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 같은 1인 가족은 그리 즐겁지만 않습니다. 물론 가족과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매일 미사가 있기에 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제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하고 익숙하지만, 늘 새롭고 낯선 영역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원래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추석특집 프로에서 김호중씨가 열창하던 , 테스형!”을 저도 모르게 혼자 반복하며 읊조리고 있습니다. 좀 황당한 질문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왜 아직도 유명할까요?

당시 그리스인 대부분의 관심은 자연세계로 가 있었습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뤄졌으며, 가장 본질적인 물질이 무엇일까? 그래서 물, , 공기, , (), 원자 등의 답을 제시한 철학자들이 등장했죠. 그때, 알아갈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깨달음을 얻은 소크라테스는 그런 무지한 우리 자신을 깨우치려 고대 격언인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던졌죠.

우리의 시야를 외적인 세계에서 인간 자신에게로 전환한 최초의 질문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끈 선구자였죠. 그는 제대로 알았을 때 바르게 행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앎과 덕을 동일시하였습니다.

또한 윤리적이고 금욕적인 그의 삶은 스토아(Stoa) 학파에 영향을 줍니다. 높은 기둥이 늘어선 복도나 회랑을 지칭하는 스토아에서 토론을 하던 그들의 참다운 행복은 외적인 것에 좌우되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의 상태란 주장도 그런 맥락입니다.

고대 로마는 자제력, 내면의 힘을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깊이 받은 사회였습니다. 그들은 선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지혜와 덕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외부 환경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했던 로마의 상황에서는 내면의 미덕과 지혜에 의존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보물을 가지고 다닌다’(Sapiens sua bona secum fert)는 격언이 나왔습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비아스(Bias), 왜 고향에서 재산을 하나도 가지고 오지 않았느냐는 사람들의 비아냥거리는 질문에 나는 내 모든 재산을 가지고 나왔다는 대답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비아스는 모든 소유가 바로 우리 내적인 영역이라는 것이죠. 곧 진정한 부와 행복은 내면에서 비롯되며, 현명한 사람은 외부 환경에 관계없이 내면의 자질과 미덕을 지니고 있다는 신념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의 기준을 그가 가지고 있는 재물의 양이 아니라, 덕으로 측정해야 한다. 덕을 갖추지 못한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고, 덕이 유일무이한 선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위기 중 하나는 지나치게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거창한 이념과 명목을 내세워도 그 속에는 돈과 성공에 대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질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은 늘어가고 파괴되는 가정, 가난과 정신적 빈곤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습니다.

민주화·산업화·세계화가 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지만, 점점 혼돈과 파멸의 깊은 심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고민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물질과 성공 같은 외적 요소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다운 인격, 지혜, 덕에 있다는 것,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만족은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런 자신만의 소중한 보물을 가진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 테스형!”을 부르며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내 생활에서 접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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