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⑫

요즘 뉴스 보기가 겁납니다. 가정과 학교에서의 갈등, 우리 사회와 남북의 극단적 대립, 세계적 불황과 기후위기 등 무엇 하나 긍정적 신호를 주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신냉전이라는 이름으로 한미일, 북중러 사이에 펼쳐지는 자존심 섞인 편 가르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 전 외국에 사는 지인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걱정했을 때, 그 정도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세계적인 화약고 안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모르게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이미 심한 상태입니다.

고대 로마는 수많은 정복전쟁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해 왔습니다. 때문에 로마사회는 자주 군사 정복을 이상화했고 전쟁을 고귀하고 명예로운 일로 묘사했습니다. 호레이스 같은 시인은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달콤하고 영광스런 일이다’(Dulce et decorum est pro patria mori)는 말로 국가를 위한 희생을 미화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이상화하는 이면에 가혹한 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로마는 많은 분쟁과 갈등에 휘말렸고 잔인한 전쟁의 후유증과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군인들은 신체적,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가정파괴도 사회를 위협하는 중요 원인이었죠.

이때 인용된 고전이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의 전쟁은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에게만 달콤하다’(Dulce bellum inexpertis)는 격언입니다. 전쟁이 야기하는 재산상의 손해와 신체적 상해와 목숨의 위협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나 철없는 지도자들에게 전쟁은 매력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의 경험은 영광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전쟁은 파괴와 죽음, 그리고 엄청난 인간적 고통을 불러옵니다. 전쟁을 겪어본 사람만이 그 참혹함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키케로의 말처럼 가장 불의한 평화가 가장 정의로운 전쟁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16세기 네덜란드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사제였던 에라스무스는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합니다. 그 시대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운동이 서양 세계를 양분시킬 위험이 감지되자 그는 양측을 화해시켜보려고 부단히 노력하죠. 그러나 개혁을 시도한 측과 거부하는 측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결국 상황은 에라스무스가 바라던 것과는 반대로 양 진영의 싸움은 끊임없는 전쟁과 박해를 낳았죠. 이에 다시 소환한 말이 핀다로스의 전쟁은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에게만 달콤하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500년이 지난 지금, 이 말은 다시 우리의 현실에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에라스무스의 탄원과 가르침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적절하고 시급합니다. 철없는 지도자들이 눈에 많이 띄기 때문입니다.

오직 정권획득과 그 유지에 눈이 먼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직접 참전하지 않는 그들에게 전쟁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벌린 일 때문에 꽃을 피워보지 못한 젊은이들이 나가 죽어가며, 그 피해를 힘없는 시민들이 감내하는 이상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현대 전쟁에서 더 이상 아름답거나 조화로운 죽음은 없다. 당신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라고 냉정하게 지적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의 참전 장군인 윌리엄 셔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네들은 전쟁의 끔찍한 면에 대해 모르네. 전쟁을 두 번 겪으면서 확실히 알겠더군. 난 잿더미로 변해버린 도시와 집들을 봤고, 수없이 많은 시체들이 죽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며 길거리에 널 부러져 있는 모습을 봤다네. 분명히 말해주자면, 전쟁은 지옥이야.”

이런 지옥 같은 전쟁의 9할은 후대 사람이 보면 어이없는 이유로, 1할은 당대 사람이 봐도 어이없는 이유로 벌어진다는 말처럼,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황당할 뿐입니다.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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