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⑪

여러 해 전 중학생들과 해외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숙소를 썼고요. 그런데 우리 친구가 거실에 놓인 커다란 꽃병을 깨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광경을 본 많은 사람이 달려와서 다친데 없냐고 묻는 순간, 그 친구가 대뜸 이거 얼마면 돼요? 나 돈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다친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괜찮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나온 반응을 보면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봤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합니다.

제 기도 중에는 선생님들도 들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담임 선생님들의 이름을 지금까지 기억합니다. 좋지 않은 머리로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의 이름을 되뇌면서 함께 생각나는 선생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물론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도 많겠지만 제가 이렇게라도 살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의 도움 덕분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학교에 관한 슬픈 소식들이 계속 들려옵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까지 되었나는 한숨과 아픈 마음으로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삼 던져 봅니다.

학교는 여가, 자유 시간, 토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σχολή’(스콜레)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말이 라틴어 Schola(스콜라)로 옮겨졌고, 영어 School은 라틴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어원으로 보면, 학교는 일상을 넘어 자유롭게 삶의 의미와 기쁨을 추구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곧 일에서 벗어난 그리스 시민들이 휴식을 하거나 음악이나 체육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아카데미(Academy)에서 토론을 한 것이 학교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는 교육의 여명기였습니다. 529년에 수도회의 창시자인 베네딕토가 최초로 수도원 학교를 열었습니다. 이후 많은 세기에 걸쳐 수도원을 중심으로 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주교들도 교육받은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해 대성당에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성직지망자를 받아들였지만, 나중에는 원하는 사람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당시 수도원과 대성당의 부설 학교는 유일한 고등교육 기관이었으며 성경공부 외에 고전과목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 스콜라의 교양으로 삼학(문법, 수사학, 변증법)과 사학(음악, 산술, 기하학, 천문학)7가지 과목이 체계화되어 갑니다.

그럼에도 중세 유럽인구의 5% 정도만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다 1088년 이탈리아 볼로냐에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이래, 대학은 학생과 교사들의 자율적인 학문의 장으로 성장합니다. 근대에 이르러서 학교는 많은 사람이 거치는 코스가 되어갔고, 각국마다 의무교육이 시행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학교의 변천사를 잠시 살펴보며 떠오르는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 배운다’(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는 말이 있습니다.

이 격언은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의 서한에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그는 당시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로마의 교육은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에게만 가능했기 때문이죠. 생계에 걱정이 없는 그들은 실생활과 먼 주제들을 논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살았습니다.

곧 인생을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식자체를 위해 배웠습니다. 이에 세네카는 쓸데없는 지식추구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며, 그런 지식은 선한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약간의 학습으로 충분하며, 삶의 지혜는 단순하고 명확하다는 것이죠. 그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유희적인 지식이 아니라, 고통스런 삶의 현실을 바라보며 공감하는 지혜의 혜안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학교의 모습은 이와 거리가 먼 거 같습니다. 입시위주의 지식교육은 창의성 계발과 자유를 구속하고,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공동체의식을 무너뜨리고 개인을 병들어 가게 합니다. 선한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분위기죠. 또한 권위를 잃은 교권은 참다운 교육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원래 학교의 존재 목적대로, 자유롭게 삶의 의미와 기쁨을 추구하며 다른 생각을 나누는 공동체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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