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⑩

상대적으로 조용한 가정에서 막내로 자라면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면보다는 순종적이고 수용적인 성격이 제 안에 더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쉽게 거절 못하고 제 생각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얌전하고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면의 나를 바라볼 기회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걸 보게 된 것은 공동체의 책임자가 된 40대이니 조금 늦었죠. 곧 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입니다. 나름 칭찬과 인정을 받으며 살아오던 인생에 찾아온 낯선 어려움이었습니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여러 쓰레기의 더러움과 악취를 맡는 순간이기도 했죠. 무얼 해도 쫓아다니며 비난하는 사람들을 많이 미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은총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친구를 조용히 꾸짖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라’(Secrete amicos admone, lauda palam)는 격언은 기원전 1세기경에 활동한 시루스(Publilius Syrus)의 말입니다. 그는 명언의 제조기 같은 사람인데, 우리가 아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쇠가 뜨거울 때 망치를 두드려라.’ ‘반복은 모든 가르침 중에 으뜸이다등의 말을 남겼습니다.

명언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그만큼 아픔과 고뇌의 크기가 함께 한다는 뜻일 텐데, 그는 원래 시리아 출신으로 로마에 끌려온 노예였습니다. 마침 뛰어난 재능과 지혜를 알아본 주인의 인정을 받아 극적으로 노예에서 해방되고 로마시민으로 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겪은 심한 풍파를 재치 있고 익살스럽게 풍자한 내용들이 연극에 자주 인용되고 지혜로운 표현으로 퍼지면서 존경받는 시인이자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것이죠.

그의 영향인지 칭찬에 대한 격언들이 계속 생산되었습니다. ‘칭찬은 자주하고 많이 한다고 손해를 보진 않지만 비판은 잘해야 본전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해도 비판이나 충고는 늘 비난으로 들릴 수 있음을 명심하라.’ ‘모든 비판은 한 번으로 끝내야 하고, 두 번하면 잔소리가 되며, 거듭하면 욕이 된다. 칭찬은 두루뭉술하게 해도 괜찮지만, 비판은 구체적이고 자세해야 한다.’

요즘에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칭찬에도 우쭐하거나, 모진 비난에도 소용돌이치지 않고 초연하다고 가르칩니다. 무엇이건 집착을 놓아버린 평정심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예수님도 형제가 죄를 지으면 먼저 단둘이 만나 타일러 주고, 개인적인 칭찬을 구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합니다. 이런 많은 가르침이 있는 걸 보면 칭찬과 비난은 누구나 겪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불행히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반대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웃에게 조그만 허물이 있으면 확대 재생산해서 퍼트리고, 칭찬거리는 애써 외면하곤 합니다. 물론 과도한 칭찬이나 자기자랑은 부자연스럽고, 공동체 안에서 잘못된 점은 공론화시키며 토론하고 비판하여 개선해가는 일은 매우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상사에서 자기의 잘못을 바라보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의 잘못은 끝까지 파헤치고 망신을 주려는 심보는 바꿔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언젠가 법조인들에게 들은 얘긴데, 법원에서 끝까지 판결로 가기보다 당사자 간의 화해와 조정으로 원만하게 분쟁을 해결하는 비율이 우리 지역에서 현저히 낮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비수를 지닌 분들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여름을 보내면서 자연을 내 몸처럼 아끼지 않아 우리 생존에 위협을 받는 체험을 했듯, 지금 이웃을 받아들이고 배려하지 못하면 내가 제대로 살기 힘듭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날선 비난은 영웅도 잠자게 하기 때문입니다.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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