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산감리교회 안인철 목사 3주기 추도식에 붙이며

 

3년 전이었다. 비가 허공을 촘촘하게 내리긋는 날, 그는 우리와 헤어지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늦은 밤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다음 날 아침 그의 영혼은 홀연히 육신을 떠나갔던 것이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판명되었다. 

어제 오전 10시 30분부터 3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그가 목회하던 교회에 20년 넘게 드나들던 내게 그와 얽힌 추억을 얘기해달라는 말에 참석한 사람들 앞에서 그에 대한 기억 몇 자락을 꺼내게 되었다. 

살아가다 사라진 사람의 가장 나중까지 남아 있는 것은, ‘태도’라는 말이 있다. 생김새, 학식, 유머, 재물, 아이큐의 높낮이도 아닌, 바로 ‘삶에 대한 태도’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크게 공감하며, 그를 회상한다.

그는 어린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를 하더라도 몸에 잘 맞는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산길을 오르는 청년처럼 어울렸다. 또한 그 모습은 늘 한결같았다. 그가 교회에 온 아이들을 만나고 있으면,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는 동안 그가 지니고 있는 물건이라든가 공간 속에 위치한 사물들이  재미있는 놀이감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다가오는 아이들을 가로막은 제자들을 꾸짖으며, 어린아이들처럼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선포하며,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한 예수의 모습을 닮으려 애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어떤 인위적인 권위와 형식, 위선적 행위를 체질적으로 거부하던 솔직담백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회칠한 무덤 같은, 그것들이 양산해내는 권력 행위에 대해서 단호했으며 격정적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 고사에서 나오는 관포지교의 포숙아 같은 태도를 견지하며 살았다. 관중이 겪는, 남들이 모르는 처지를 이해하며 보호하려고 애쓰던  포숙의 모습과 비견된다. 

난만한 세상을 건강하고 질서 있게 변화시켜보려는 지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았지만, 그는 거기에서 일하는 실무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부대끼며 헌신했다. 

때문에 많은 지역의 활동가들의 공적인 어려움은 물론, 개인적인 고충과 고민까지 함께 감당하는 상황에 자주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한 점이 그의 삶을 가장 어렵게 했던 요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나이들도 제법 들고, 삶을 다시금 여유롭게 해석도 하고, 미안했다는 말도 건네며 위로도 해야 하는데, 그는 너무나 일찍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삶의 태도는, 우리 의식의 등뼈로 남아 삶을 선연하게 곧추세우고 있다고 믿는다.

이희출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이희출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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