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잔상-9

요즘은 없어졌지만 60년대 까지는 여름철 시골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원두막이었다.

원두막은 기둥을 네 개 세워 밭머리에 지은 정자이다. 요즘 정자는 수 십 년 이용할 건축물이기에 견고함뿐만 아니라 예술성까지 갖춰 4, 6, 8각 등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멋을 내고 품격 있는 건축재를 사용하지만 원두막은 참외나 수박 등 수확기 한철 이용할 시설이기에 자재나 모양은 허술했다.

원두막의 용도는 참외 등 판매와 절도방지용 망루로 쓰였다. 지금은 교통과 유통망이 좋아 경북의 성주 참외와 전북의 고창 수박을 전국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땐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당시에는 시골에서 참외 농사를 지으면 주로 현장 판매를 했다. 읍내가 가까운 마을에서는 지게로 지고 읍내까지 가서 넘길 수 있지만 외진 마을에서는 수확한 참외를 시장까지 운반할 방법이 없으니 주변 마을에서 원두막으로 찾아온 주민에게 팔았다.

손님이 오면 일단 못난이 참외 한두 개 깎아먹게 권하고 주인은 새끼줄로 만든 구럭을 메고 원두밭에 들어가 잘 익은 참외를 따다가 판다. 그 당시 시골 사람들은 은행계좌가 무엇이지 알지도 못하였고 돈 한 푼도 없이 한 두보름 넘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물물교환 방식으로 집에 있는 쌀이나 보리쌀 한·두되를 들고 와서 참외로 바꾸어 집에서 가지고 온 자루에 담아 메고 갔다. 참외 농사를 지은 농민은 이렇게 모인 곡식을 양식이 부족한 사람에게 팔거나 시장에 팔아서 현금화 했다.

당시는 돈은 없고 배고프던 시절이니 청소년들은 밤에 남의 참외밭으로 습격 가는 것을 예사로 생각했다. 당연히 절도 행위지만 그 당시는 아이들 참외 서리라 해서 좀 관대히 처벌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주인 입장에서는 일 년 농사를 그르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주인이 따놓은 참외를 한보따리 훔쳐 가기만 한다면 참외 몇 개 손실이지만 청소년들이 밭에 떼로 들어와 조심성 없이 휘젓고 다니면 참외넝쿨이 망신창이가 되어 일 년 농사를 아예 망칠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인은 참외가 익기 전부터 밤낮없이 원두막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밤에도 넓은 참외밭을 잘 살피기 위해서는 시야가 넓은 높은 망루가 필요하였기에 원두막은 요즘의 정자보다는 높게 지었다.

냉방시설이라곤 부채밖에 없던 시절에 높은 원두막은 사방이 트여 바람이 잘 통하고 호밀짚으로 덮은 지붕이 햇볕을 완벽히 막아주니 그 시원함은 견줄 곳이 없었다. 그래서 더위에 땀 흘리며 길 가던 행인도 원두막에 올라 달달한 참외 깎아먹는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다. 주변에 솜씨 있고 삶의 멋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제 돈으로 모기장 몇 폭 끊어 와서 원두막에 섬세히 고정시키고 파리, 모기 없는 공간을 만들어 열대야에 모두 잠 못 이룰 때 담요 한 장 들고와 참외밭 주인과 말동무도 하며 단잠의 행복을 누리기도 했다.

조상일 서산시 음암면주민자치회장
조상일 서산시 음암면주민자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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