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대 문단

시인 박영춘
시인 박영춘

이제 본격적인 물놀이의 계절이다. 사람들은 강이나 바다를 찾아가 더위를 식힌다. 하지만 강이나 바다는 위험하기도 하고 날씨가 나쁘면 가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안전하고 쾌적한 물놀이는 자연계곡을 찾으면 이런저런 염려는 거의 없어 좋다.

여름이면 가고 싶은 곳이 인근에 있다. 서산 운산용현계곡이다. 백제 천년의 미소 마애삼존불상 파란 미소가 세상을 굽어보는 이 계곡은 천혜의 자연적 골짜기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골짜기 중간 중간에 물 턱이 있어 시원한 곳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활엽수의 녹음 속에 졸졸졸 흘러내리는 개울물의 속살거림이 운치를 더해주는 곳이다.

울창한 숲이 햇볕을 가려 한여름에도 계곡에 발을 담그면 온몸이 싸늘하게 식는 곳이다. 이 곳의 물소리는 마치 최치원 선생과 그 제자들의 글 읽는 소리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여울물 조잘거리는 개울을 따라 계곡을 더듬어 올라가면 온갖 번뇌는 사라진다. 뒤숭숭하던 머리는 맑아지고 시원해진다.

정신치료제인 휴양림의 약효를 톡톡히 보는 곳이다. 산책길은 은근한 높이일 뿐 언덕길은 별로 없다. 연인과 함께 만단정회를 나누며 마냥 걸으면 밉던 정도 따뜻하게 새롭게 샘솟아 올라 사랑이 아름답게 꽃피는 곳이다.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2십리 길을 꿈결처럼 걷다보면 무능도원을 거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어디선가 황진이와 서화담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술잔을 나누며 사랑의 소꿉놀이를 하고 있을 것만 같은 2십리 길 계곡은 지금 녹음이 우거질 대로 우거졌다. 청춘남녀들이 손에 손을 잡고 계곡을 오르내린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치며 마냥 종알거린다.

원추리 꽃은 산들바람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얼굴을 불그레하게 붉힌다. 산나리 꽃은 수줍은 처녀마냥 꽃잎이 빨갛게 달아올라 붉은 입술을 태양 빛에 불태운다. 아득한 옛날 천 년 묵은 암용 한 마리가 풀잎에 맺힌 이슬을 털며 몸부림치던 곳. 비바람 번개 치던 날 하늘나라로 길 떠나던 자리. 거대한 몸체가 그야말로 용트림하고 빠져나간 자리. 물웅덩이. 그 자리엔 바위가 물을 안고 있다.

고여선 넘치고 또 고여선 넘치고 영겁을 고이고 흐른다. 가슴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의 소리처럼 폭포소리가 계곡을 울린다. 뉘엿뉘엿 해 저무는 깊은 산중에 소리 내어 한껏 울부짖는 외침, 물줄기의 한 맺힌 통곡소리와도 같다.

캄캄한 물웅덩이 벼랑 앞에 서서 소리 내어 한번 실컷 울어보고 싶은 곳이다. 하늘을 보니 뭉게구름이 바람 따라 두리둥실 떠간다. 그 구름과 바람아래 가야산은 말없이 가부좌 틀어 수천수만 년을 앉아있다.

그 산기슭엔 골짜기, 그 골짜기엔 시냇물, 그 시냇물 가엔 돌과 숲, 돌 위와 숲 속엔 아담한 연인들의 사랑이 무르익어 가고, 고독한 나그네는 또 다른 나를 찾아 이 숲 속을 오늘도 별수 없이 방황만 한다.

산 아래 녹음이 골짜기를 메우는데 태양의 볕은 뜨거울 대로 뜨겁다. 더운 여름 날 땅은 지글지글 끓어도 우물 속은 싸늘하듯이 골짜기 나뭇잎은 뜨거워 시들부들 늘어져도 숲 속 개울은 싸늘하다. 거기서, 거기에 있는 그것들과 하나 되고 싶은 곳이다.

발은 차게, 머리는 시원하게, 가슴은 뜨겁게 하여 사랑을 불태우고 싶은 충동이 일렁이는 곳이다. 산은 말이 없으면서도 항상 가슴으로 말을 건넨다. 그 산은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만들지 말라 한다. 그리고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개울물은 사시사철 불경을 외며 흐른다. 산을 닮아 물과 함께 이 계곡에서 자연처럼 늘 푸르게 살라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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