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기고문

 

초등학교 4학년 봄

아침저녁으로 쌀쌀했던 탓에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양지바른 곳을 찾기 마련이다.

그 날도 어김없이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학교 사택 벽에 나란히 모여 있었다. 그러던 중 제 몸은 순간 이동이라도 하듯 땅 속으로 꺼져버렸다. 다행히 양 팔을 벌려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는데 거기가 바로 사택 안에 화장실이 있고 밖에서 일명 푸세식이라 하는뚜껑을 열고 오물을 처리하는 곳이었다.

그 뚜껑을 밟고 있다가 뚜껑이 밑으로 빠져버린 것이었다.

양 팔이 지탱은 하고 있었지만 다리 부분은 오물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아시고 달려오신 이종훈 선생님!

제 이름과 비슷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

저를 끌어 올리셨고 바지를 벗겨 손수 빨아서 봉투에 담아주시고 선생님 츄리닝 밑단을 접고 접어서 입혀주셨다.

키가 친구들보다 작았기에 바지 반은 접었던 기억이다.

제자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냄새나는 옷을 빨아주시고 목욕까지 시켜주시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 때 제 꿈이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자리를 잡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신체에 이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교대에 원서를 냈는데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적록색약" 청천벽력과 같은 교대 교직원의 연락을 받고 당시 초등교사로 계시던 큰아버지와 함께 충남대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참느라 가슴에 통증이 옴을 느꼈었다.

저는 삼남매를 두고 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작은 딸이 하는 말 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거야

지금 그 애가 교대 3학년에 재학 중이다.

합격 통보를 받던 3년 전 그 날 아마 태어나 처음으로 목청 높여 소리를 질렀었다. 눈물도 동시에 흘리면서...

고마우신 선생님이 오늘따라 많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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