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갈산동 발굴유해에 대한 안치식이 거행되었다

7월 29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서산시 갈산동 발굴유해에 대한 안치식이 서산시청 앞에서 거행되었다.
7월 29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서산시 갈산동 발굴유해에 대한 안치식이 서산시청 앞에서 거행되었다.

 

729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서산시 갈산동 발굴유해에 대한 안치식이 서산시청 앞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안치식 사회를 맡은 이승원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먼저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위로하고 추모하는 마음에서 묵념이 있은 후, 이호형 동방문화재연구원 원장의 유해발굴조사에 대한 경과보고가 있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위로하고 추모하는 마음에서 묵념했다.
참석자들은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위로하고 추모하는 마음에서 묵념했다.

 

유해발굴조사에 대한 경과보고 및 제례

 

이호형 원장의 경과보고 내내, 73년 전 그날의 통곡소리와 눈물이 땡볕아래 주루룩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되어 온 몸을 적셔오는 듯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은 울음소리마저도 삼키듯이 정적이 감돌았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510일부터 20여 일간 충남 서산시 갈산동 176-4번지 봉화산 교통호 인근 현장에서 유해발굴을 해왔으며, 530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조사 중간보고가 서산 갈산동 176-4번지 인근에서 열렸었다.

충남 서산시 갈산동 176-4번지 (갈산동 교통호)의 유해발굴조사에서는 길이 약 50m의 교통호에서 약 60구의 희생자가 발굴되었다.

발굴 지역인 교통호는 1950년 인민군 점령기에 인민군이 전투를 대비해 판 곳으로 수복 후 서산지역 부역혐의자들이 이곳에서 집단 학살됐다.

폭과 깊이가 1m도 안 되는 좁은 교통호를 따라 굵은 다리뼈들뿐만 아니라 척추뼈와 갈비뼈까지도 완전하게 남아 있는 상태로 발굴됐고, 이는 당시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 후 머리 뒤를 총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들은 옆으로 누워있거나 고꾸라져 있는 모습으로 사망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었다.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초헌은 정명호 희장, 아헌은 황창순 부회장, 종헌은 김용일 충청남도연합회장의 순서로 세잔 술잔을 올려드리는 제례가 있었다.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서 초헌은 정명호 희장, 아헌은 황창순 부회장, 종헌은 김용일 충청남도연합회장의 순서로 세잔 술잔을 올려드리는 제례가 있었다.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서 초헌은 정명호 희장, 아헌은 황창순 부회장, 종헌은 김용일 충청남도연합회장의 순서로 세잔 술잔을 올려드리는 제례가 있었다.

 

추도사 및 유족대표 인사

 

이완섭 서산시장의 추도사, 진실화해위원회 임나혁 전문위원의 추도사와 황창순 유족대표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완섭 시장은 추도사를 시작하기 전에 갈산동 유해발굴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이들과 불볕 폭염에도 함께 아픔을 나누고 추모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착잡한 마음과 더불어 감사함을 전했다.

이어 그는 희생자들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갔던 2040대의 성인 남성들이었으며, 좁은 1m 남짓인 교통호 속에서 2, 3중으로 겹겹이, 또 양손이 뒤로 묶인 채로 죽임을 당했던 모습에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라며 몹시 참담한 마음을 드러냈다.

또한 6.25 전쟁은 군인들보다도 민간인들 희생이 많았던 그런 전쟁입니다. 정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분들의 유가족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60구의 유해는 발굴되었지만 아직 유가족들을 찾을 수 있는 유전자 감식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 자리가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억울한 희생을 당하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또 행정적으로 뒷받침을 해야 될 부분들이 있으면 서산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완섭 시장이 갈산동 유해발굴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이들과 불볕 폭염에도 불구하고 함께 아픔을 나누고 추모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착잡한 마음과 더불어 감사함을 전했다.
이완섭 시장이 갈산동 유해발굴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이들과 불볕 폭염에도 불구하고 함께 아픔을 나누고 추모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착잡한 마음과 더불어 감사함을 전했다.

 

임나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전문위원은 서산 갈산동에서 발굴된 약 60여 위의 희생자분들을 모시는 안치식에 참여하여 “2008년 지난 제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으로 서산지역 부역혐의사건 관련해서 977명의 무고한 희생에 대한 진실규명이 이루어졌고,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새롭게 신청된 527건에 대해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올해 510일부터 시작된 유해발굴을 통해서 7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방치되었던 분들을 이렇게 모시고 국가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동안 이렇게 기다려주시고 모든 과정에 참석해 주신 유가족분들께 감사하는 마음과 위로를 함께 드린다진실규명이 된 비극적인 사건의 실체를 유해 발굴로 다시금 확인하게 되어 가슴이 많이 아프지만, 이를 통해서 역사적인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또 희생자들에 대한 인권은 물론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창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서산유족회 부회장은 오늘 안치식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시장님 이하 서산시의 협조와 한국선사문화연구원과 동방문화재연구원의 발굴팀과 박선주 교수의 감식에 대한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유족대표로서 말했다.

이어 그는 저는 100일도 안 된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여태껏 아버지라는 세 글자를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나이가 이제 일흔다섯을 향해가고 있지만 아버지라는 세 글자를 부르기 위해서 저와 유족회원들은 유해를 찾아 5년 동안 산하를 헤맸고, 그 결과로 오늘의 안치식을 거행하게 되어 가슴 뿌듯합니다라고 감격스러움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부에게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씀은 유해에 대한 DNA 검사를 해서 살아있을 때 가족의 품으로 한 사람이라도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유해만 발굴했으면 뭐 합니까? 조속한 시일 내 DNA 검사를 해서 한 구의 유해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그것이 정녕 뜻있는 일인데 아직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 믿을 곳이 없습니다. 이분들은 행정기관에 의해서, 공권력에 의해서 돌아가신 분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이것을 조속히 해달라는 부탁을 드립니다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정명호 서산유족회 회장은 발굴한 60구의 유해는 우리의 부모, 형제들이다. 참담함과 분노를 느낀다. 무고한 민간인을 아무런 법적절차도 없이 무자비하게 학살하여 짐승의 먹잇감이 되게 한 행위는 결코 용서 못할 국가범죄이며 정부는 분명히 공개사과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산시에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채 어딘가에 묻혀있을 유해를 찾아내어 영면 안식할 수 있도록 우리 유족들의 임무를 마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헌화와 세종시 추모의 집으로 떠나는 운구차에 유해를 모시는 것으로 오늘의 행사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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