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잔상-8

현 도당로에 설치되었던 돌다리의 돌 상판중 하나이며 종잣골에서 내려오는 개울에 놓였었고 당시는 이 돌다리를 쪽다리라 불렀고 현재 음암면 사무소 정원에 보관중인 유물.
현 도당로에 설치되었던 돌다리의 돌 상판중 하나이며 종잣골에서 내려오는 개울에 놓였었고 당시는 이 돌다리를 쪽다리라 불렀고 현재 음암면 사무소 정원에 보관중인 유물.

요즘은 좁은 하천부터 넓은 강과 바다까지 별의별 형태의 다리를 설치하지만, 6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을 하기 전의 농촌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닦아놓은 국도 급 신작로에서만 콘크리트 다리를 볼 수 있었고 그 외 마을 간 도로에는 주민이 스스로 설치 관리하는 3가지의 전통 다리만 있었다.

첫번째 다리는 하천이 넓은 곳에 설치하는 징검다리다. 징검다리는 물에 쉽게 떠내려가지 않을 정도의 큼직한 돌덩이를 하천 바닥에 듬성듬성 늘어놓고 건너다니는 다리이다.

이처럼 큰 돌덩이만 있으면 쉽게 설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큰비가 오면 모랫바닥이 파여 늘어놓은 돌덩이가 굴러 넘어가니 큰비가 온 후에는 반드시 수리를 해야만 이용할 수가 있었다.

두번째 다리는 돌다리이다.

돌다리는 들판 길에서 용 배수로 위로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설치하는 다리다.

도랑 벽면에 튼튼하게 돌을 세우고 두께가 30cm 정도의 넓고 큰 돌을 올려놓는다. 도로의 폭이 180cm를 목표로 하니 넓적한 돌 두세 개를 준비해야 가능하고 전 주민이 힘을 모아야 하는 당시로선 큰 공사였다.

돌다리는 교각 역할을 하는 세움돌만 튼튼하게 설치하면 큰 보수 없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리이다.

이러한 돌다리는 안전함의 상징이 되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외나무다리이다.

외나무다리는 들판을 따라 흐르는 폭이 좁고 둑은 높은 소하천에 설치하였다. 이때 하천 폭이 좁았던 것은 한포기의 벼라도 더 심기 위함이고 둑이 높은 것은 큰비에도 물이 논으로 넘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외나무다리는 통나무를 제방 위에 걸쳐놓고 건너다닌다고 하여 외나무다리라 칭하지만, 실상은 나무 두 그루를 베어다 합쳐서 묶어 설치하였다. 그래야 걸어 다닐 수 있는 폭이 나오고 무엇보다 한 토막을 걸쳐놓으면 나무가 뒹굴 수가 있어 위험했기 때문이다.

외나무다리로 사용되는 주 나무는 밤나무나 아까시나무이다. 밤나무와 아까시나무는 질겨서 부러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눈, 비를 맞아도 여러 해를 견뎠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나무다리에는 몸만 건너다니는 장소가 아니었다.

당시의 보행자들은 빈손보다는 대부분 짐을 가지고 다녔기에 사람들 손에나 등에는 항상 짐이 들려있었고, 노약자들이 짐을 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은 위험하여 일행 중 젊은이가 남의 짐을 가지고 두세 번 다리를 건너며 어른들을 공경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으며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어른들이 불어난 하천물에 하굣길 아이들이 걱정되어 옷 젖는 것 마다치 않고 외나무다리 부근에서 대기하며 아이들이 빗물에 미끄러워진 통나무 다리를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랑의 장소이기도 했다.

조상일 서산시 음암면주민자치회장
조상일 서산시 음암면주민자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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