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⑧

무더위와 긴 장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우울한 소식이 매일 들려옵니다. 각종 재난과 사고에 대한 것이죠. 그야말로 우리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 있고, 당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이 없어 보입니다. 희생을 당한 분들의 억울함을 바로 잡아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곳곳에 의인이 있고, 우리 동네엔 큰 사고가 없었던 것에 고마울 뿐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재해를 만납니다. 위대한 인간이지만 자연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수시로 합니다. 반면에 누군가 한 사람이 주위를 기울이고 노력했다면 피할 수 있는 재해도 많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겪은 사고도 후자의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만 더 충실했다면 큰 사고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런 사고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면 분노가 일어납니다. 누구나 부족하고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이웃의 고통 앞에서 뻔뻔한 모습에 화가 납니다.

화로 표현되기도 하는 분노는 그 자체로는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중 하나입니다.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문제지만, 분노를 너무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것 역시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적절하게 조절하고 표출할 수만 있다면, 분노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도 있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희망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다’(Spes duas filias pulchras habet)는 라틴어 격언이 있습니다. 그 두 딸의 정체는 바로 분노와 용기입니다. 희망의 첫 번째 딸인 분노는 통제되지 않거나 파괴적인 분노가 아니라, 정당한 분노나 현실에 대한 불만을 말합니다.

이 분노는 세상의 불의, 고통, 잘못된 상황에 대한 불편함이죠. 이에 대한 의로운 분노는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고 변화를 추구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둘째 딸인 용기는 더 나은 결과를 추구하는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하는 힘입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맞서고 역경에 직면하여 끈기 있게 버티려면 용기가 필요하죠. 희망만으로는 장애물을 극복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용기가 있으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 위험을 감수하며 희망을 이룰 힘을 얻게 됩니다.

희망이 불의에 대한 분노와 행동하는 용기와 결합될 때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이죠. 곧 희망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을, 분노와 용기는 그것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동기와 인내를 제공합니다.

이런 희망의 반대말은 냉소라 할 수 있으며, 냉소에게도 두 딸이 있습니다. 그 두 딸의 이름은 무관심과 비겁입니다. 이웃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차가움은 무관심과 비겁으로 나타나죠. 그렇게 될 때, 자신의 일부가 죽어갈 것이고 결국 우리 모두도 서서히 죽어갈 것입니다.

자기를 지킬 힘이 없는 태아와 유아를 죽이고, 자기보다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갑질하는 세상의 잘못된 모습에 나는 충분히 분노하고 있는지, 그런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갈 용기를 갖고 있는지를 질문하면 스스로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함께 힘을 합쳐 나간다면 조금이라도 세상의 변화가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사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의로운 분노와 용기 없이 조용히 살아간다면 세상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점점 그렇게 무관심과 비겁으로 향하는 길의 끝에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참된 희망을 갖고 살 때 우리에겐 언제나 탈출구가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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