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155

둘째가 생긴 이래로 아이들과 떨어져 밤을 보내는 건 처음이다.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12일의 힐링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육아휴직이 마음의 부담을 덜어줬다.

아침에 두 아이를 학교와 유치원에 차례로 보내고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대운산 깊은 산자락에 넓고 정갈한 힐링 체험관이 있었다. 체크인을 하면서 체험복을 받아들고 사물함이 있는 곳으로 우르르 이동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사물함에 짐을 넣고 옷을 갈아입었다. 해병대 캠프도 아니고 도착하자마자 쉴 새도 없이 단체로 환복을 하는 상황이 의아하기도 우습기도 했다.

간단한 이용 설명을 듣고 조별 생태숲 걷기 명상을 했다. 정자에 모여 몸을 푸는데 바람이 불면서 풍경이 흔들렸다. 마음을 살살 두드려주는 청아한 풍경 소리였다. 복식호흡을 하며 구부러진 산책길을 다람쥐처럼 오르다 멈춰서서 먼 산을 바라보며 눈과 귀와 코와 마음을 열었다. 피톤치드가 가득한 곳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피톤치드를 내뿜는다고 한다. 숲 해설사의 지시에 따라 나뭇잎 하나를 따서 절반으로 잘랐다. 향긋한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그걸 또 반으로 자르고 또 반으로 잘랐다. 자를 때마다 다른 향이 났다.

나무에 상처가 나면 피톤치드가 더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나는 상처를 받을 때 무엇을 내뿜었을까. 그것은 향이었을까 독이었을까. 답을 알고 있기에 부끄러움이 인다.

조금 더 올라가니 거대한 그물로 만들어진 해먹이 보였다. 원추리꽃이 가득 핀 꽃밭 위에 누워 해먹 명상을 하는데 공중에 뜬 몸처럼 마음이 둥둥 떠올랐다. 구름이 적당한 하늘, 솔솔 불어오는 바람, 아래에서 풍겨오는 꽃향기, 땀이 식으면서 시원해지는 등, 좋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조금 걷자 계곡이 나왔다. 바위에 걸터앉아 운동화를 벗고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발에 닿자 정신이 쨍하게 맑아졌다. 옆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작은 물고기들이 발을 간지럽혔다.

발을 닦고 내려가는 길, 상수리 나뭇가지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도토리가 덜 익어 과육이 부드러울 때 그 속에 알을 낳고 톱질을 해서 나뭇가지를 잘라 떨어뜨리는 도토리거위벌레 짓이었다. 낙하하는 동안 공기저항을 많이 받도록 나뭇잎이 붙어있었다. 안전하게 땅으로 착륙한 애벌레는 과육을 먹고 땅속으로 들어가 숙면을 취할 것이다. 나뭇가지에서 자연의 신비와 그 속에 담긴 모성애를 느꼈다.

삼면이 통창으로 된 심신치유실에서 아로마 테라피와 싱잉볼 사운드 테라피도 받았다. 넓은 치유실에서 대운산의 짙은 녹음을 시선에 담으며 명상의 시간을 보냈으나 마음의 번잡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운드 테라피 중간에 코를 고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도 말끔하게 비워내고 싶었다.

그 외에도 커피연수, 열치료실에서 반신욕과 찜질, 아쿠아 테라피실에서 아쿠아 마사지 스파, 수치료실에서 냉온욕 체험까지 알차게 하고 저녁 750분에야 숙소로 올라갔다. 나를 위해 나를 비움동에 내가 묵을 숙소가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처음으로 가족들과 통화를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일상생활을 그런대로 순조롭게 이어가고 있었지만, 고대하던 외박을 하던 나는 혼자여서인지 별로 신나지 않았다. 1인용 침대에서 자는 것이 두 딸 사이에 끼어 불편하게 자는 것보다 편안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남이 해주는 밥을 연이어 세 끼 먹고 나니 마음속 소란이 한 걸음 물러났고 요가를 할 때는 드디어 몸과 마음이 부드럽게 이완됐다. 그것은 집에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때론 혼자여도 괜찮지만, 함께일 때가 더 좋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녀와 함께하는 힐링 프로그램과 장소를 찾아보면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녀를 돌보는 것은 고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진정한 내 힐링 포인트였다.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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