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의료원 응급의학과 신재복 센터장의 “응급실 24시”

서산의료원 응급의학과 신재복 센터장
서산의료원 응급의학과 신재복 센터장

인간 총체에서 만날 수 있는 선과 악,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헤르만 헤세. 그를 좋아하는 서산의료원 응급의학과 신재복 센터장. 여전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응급실에서 그의 24시간은 바쁘기만 하다.

단편적인 응급실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고민했던 헤르만 헤세를 떠올리며 생과 사의 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 성장하느냐는 것을 깊이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긴장의 연속인 응급실에서 천편일률적으로 환자를 대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한다고 했다.

아래는 서산의료원 응급의학과 신재복 센터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평일에만도 하루 100명 정도의 환자들이 서산의료원 응급실을 찾는다. 
평일에만도 하루 100명 정도의 환자들이 서산의료원 응급실을 찾는다. 

 

Q 서산이 초고령화 시대에 진입했다. 응급실에 오시는 분들은 주로 어떤 분들인가?

평일에만도 하루 100명 정도의 환자들이 오시는데, 그중에서도 주로 80대 이상의 고령 환자가 많다. 물론 독거노인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젊은 사람 중에서는 교통사고가 많고, 다치고 깨지고 이런 사람들이 그 뒤를 잇는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검사하면 뭐라도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독거노인은 보호자를 찾아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부분도 많다. 가령 여기서 치료가 안 돼서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할 때, 그럴 때 이제 보호자가 없으면 수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 여기서 검사하고 입원하려고 할 때도 보호자 동의 없이 함부로 하기도 어렵다.

뿐만아니라 대학병원 규모의 설비나 인프라가 안 되다 보니 보호자가 있는 것만큼 빠르고 깔끔하게 진행되지 않아 에너지 소비가 많다.

특히 애로사항이라면 환자들이 대학병원 수준으로 생각하고 최종 목적지로 알고 온다. 물론 이곳이 최종 목적지가 될 수도 있지만, 능력 범위를 벗어나면 안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치료가 안 될 거라고 기대를 낮추고 왔어도 치료가 될 수 있는 부분들도 있다. 어쨌든 그런 괴리감에서 오는 갈등들이 내재되어 있다.

Q 의료진과 환자 간에 조금은 갈등이 일어나는 곳이 응급실이라고 하는데.

의료진과 환자 간의 협조가 잘 이루어져야 되는 곳이 특히 응급실이라고 생각한다. 저희도 조금 더 친절하게 다가가고, 환자들도 응급실에 대한 개념을 좀 더 잘 이해하면 문제없다.

먼저, 환자가 들어 오면 저희는 접수부터 하고 오세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람을 돈으로 본다라고 한다. ‘차갑고, 돈 밝히고, 비싸고, 빨리 안 해주고...’ 이것은 오해다. 모두 전산화되어 있어 접수를 해주셔야 빨리 검사를 해드릴 수 있다. 순서를 빨리 앞당겨 드릴 수도 있고, 검사 처방과 약도 드릴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것은 여러분을 도와드리려고 하는 것이니 그런 것들에 대한 오해가 계몽됐으면 좋겠다.

그나마도 서산의료원은 일반 대학병원이랑 비교하면 친절하게, 정말 빨리, 열심히 도와드리는 편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인식이 조금 더 바뀌기를 바란다.

응급실의 24시는 긴장의 연속이다. 
응급실의 24시는 긴장의 연속이라는 신재복 센터장

 

Q 대부분 회피하는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던데 이유라도 있는지.

의사다운 의사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도없이 던졌다. 그러다 기초과학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을 굳혀 선택하게 됐다.

이 교수님은 병원에서 임상 환자 보는 것이 아닌 생리학·생화학을 가르치시는, 굉장히 훌륭하신 교수님이셨다. 이분이 한번은 비행기를 탑승했는데 그 안에서 위중한 환자가 발생했다는 닥터콜이 울렸단다.

닥터 있으면 와주세요라고 했는데 정작 본인은 환자를 볼 줄 모르니까 가만히 앉아 계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생각하는 의사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하게 됐다.

그 해답이 바로 전천후 응급의학과. (응급의학과)어떤 상황에서도 다 대처할 수 있는 의사들이다. 그것도 특히 위중한 사람들 위주로. 제가 생각하는 의사의 모습에 부합한다.

Q 그렇다면 센터장님이 생각하는 응급의학과는 어떤 곳인가?

일단은 중환자랑 싸우는 곳이다. 숨어있는 중환자를 찾아내는 곳이다. 중환자가 아닌 사람 중에 자신이 중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즉 이런 거다. 우리가 먼저 보고 해결해 드려야 되는 건 중환자. 그리고 본인은 중환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찾아내 줘야 하는 곳. 그리고 급한 환자니까 빨리 내 새끼 해줘”, “우리 부모 해줘”, “나 먼저 치료해줘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고 저 환자가 먼저니까 저 환자를 먼저 해주고 봐주겠다라고 설득하는 곳이다.

24시간 진료를 하다 보면 다양한 환자들이 너무너무 많다. 특히 충남도 권역에는 연령층이 주로 고령인 80, 90, 100세 분들이 굉장히 많다. 방치되는 환자들, 병을 쌓아놓고 있다 오시는 환자들도 상당수다.

 
서산의료원 응급실 입구
서산의료원 응급실 입구

 

Q 응급실에 있다보면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들도 있을 것 같다.

최근 배가 아프다고 응급실로 들어오신 분이셨다. 검사 결과가 괜찮았다. 그런데 (검사는)괜찮은데 자꾸 위화감이 생기는게 영 이상했다. 워낙 환자를 많이 보면 그럴 때가 종종 있다. 괜찮다고 보여져도 괜찮지가 않은 것 같은 느낌?

그분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분이셨다. CT를 권해서 찍었는데 췌장에 이상한 증상이 보였다. 정식 판독을 넘겨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는 것 같은데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 대학병원에 (CT)보냈다.

그곳에서 초기 암 환자로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과정이란 게 발견됐다. 어느날, 초기에 잘 발견해서 치료 받고 계신 그 분이 감사의 의미로 피자를 잔뜩 보냈주셨다(웃음).

치료가 안 된 사례로는 고등학생이 과다출혈로 사망했던 일이다. 젊은 친구들이 싸우다가 그중 한 친구가 칼로 다른 한 친구를 찌른 사건이었다. 119를 불렀는데 늦었다. ‘젊으니까 조금만 더 해보면 된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아쉬운 환자다.

안타까운 일도 기억난다. 20117월 레지던트 시절이다. 서울 강남 뒤쪽 우면산에 산사태가 일어나 산 아래 아파트가 매몰돼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죠. 당시 시체가 버스로 몇 대씩, 몇백구가 들어왔다. 의사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다.

돌아가실 만해서 돌아가시게 되면 최선을 다했다라는 게 있는데, 당시 산사태 때는 갓난아기도, 초등학생, 중학생, 젊은 친구들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게 됐다. 안타까움이 훨씬 컸다.

 

Q 산사태 같은 끔찍한 모습을 보면 트라우마 같은 것은 없나?

다행스럽게도 저는 (응급의학과)잘 맞는지 괜찮다. 때로 일반인들이 내게 환자가 죽는다 든지, 피를 철철 흘리면 마음이 동하지 않느냐? 힘들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해올 때가 있다.

그런 거에 휩쓸리면 다음 환자를 보지 못한다. 아니 그런 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일을 오래 하는 건 힘들 것 같다. 물론 훈련이 됐다고도 본다. 다행이다.

 
천태만상의 모습들이 공존하는 응급실 닥터 신재복 센터장
천태만상의 모습들이 공존하는 응급실 닥터 신재복 센터장

 

Q 응급실에 있으면 황당한 사건도 있을텐데.

너무 많다. 레지던트 3년 차였을 때다. 한 아버지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아들이 아빠가 밥과 김치를 먹다가 갑자기 의식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농약을 먹었을 때 생기는 증상이 보이더라.

입원치료를 잘 받아 퇴원할 시점이 됐을 때 아들이 농약 중독인 것 같다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다음 날 와서는 동네에서 떠도는 개 세 마리를 잡아서 농약을 먹여봤더니 아빠랑 증상이 똑같았다는 얘기를 했다.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잊었다.

레지던트는 지역을 순환한다. 여러 군데를 거치고 다시 그 병원에 왔었는데 어느날 20대 젊은 여학생이 남자친구와 술을 먹다 응급실로 실려 왔다. 남자친구가 술 깨는 약이라고 해서 그 약을 먹고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검사 결과 농약을 먹은 게 의심됐다.

아무 문제 없이 치료가 잘 됐다. 그리곤 남자친구가 의심되니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고 병동과 환자분, 보호자에게도 말해줬다. 그런데 얼마 후 남자친구라고 찾아왔는데 지난번 그 아들이었다. 증거는 없지만 강력하게 의심이 됐다. 일단은 경찰에 신고했던 적이 있다.

농약이라고 하니까 또 생각이 나는데 젊은 청년이 길을 가다가 어떤 할머니가 길을 묻길래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단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꿀물 음료 한 병을 청년에게 건네줬고. 청년은 전혀 의심 없이 소리가 나지 않아도 그걸 마셨다. 그것은 바로 락스였다.

어쨌든 저희의 목적은 정황을 파악하는 것보다는 생존 그리고 치료에 목적을 두고 있으니까 이런 일들은 경찰에 연결만 시켜준다. 아무튼 정말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이 생겨난다. 절대 소리 안 나는 음료는 받아먹지 마시기 바란다.

 

Q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겪다 보면 심리적으로 힘들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스트레스는 무엇으로 푸나?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훈련이 제법 잘 되어 있다. 특히 사사로운 감정들에 휩쓸리다 보면 다음 환자를 보지 못한다.

스트레스 해소로는 여행을 자주한다. 중학교 때까지는 외교관이 꿈일 정도였다. 외국인과 말이 통할 뿐만 아니라 함께 있으면 굉장히 편하다. 지금도 짬이 나면 외국으로 많이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블로그에 여행 후기를 올리기도 한다.

혼자 있을 때는 고전을 읽는다. 글 쓰는 것도 워낙 좋아한다. 저는 사실 문과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인데 성적은 이과적인 게 나오다 보니까 의대를 지망한 경우다. 문과가 아니라면 의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순수과학보다는 그래도 사람을 대면하고 인간다움을 찾는 방향으로써는 의사만한 게 없으니까.

 

Q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동창을 만났는데 업무 만족도 얘기를 하다가 지금 일이 맞든 안 맞든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빠른 은퇴를 하든지, 아니면 자영업 하기를 원한다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저는 왜 하기 싫을까? 나는 며칠 쉬다 보면 또 나와서 일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더라.

진심 진짜 천직을 만났다는 생각으로 체력만 허락된다면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응급실 닥터다. 심지어 누가 나이 먹어서 언제 은퇴할래요?” 그러면 저는 죽기 전날까지 출근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것 같다. 그만큼 힘들긴 하지만 확실히 보람을 느끼며 재밌게, 만족하며 근무하는 곳이 응급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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