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영춘
시인 박영춘

풍무량(豊無量)! 운무량(雲無量)! 헤아릴 수 없이 불어가고 불어오는 바람. 헤아릴 수 없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구름. 바람이 솔잎을 울리는 덕숭산 중턱, 만공도 허공도 아닌 둥그런 돌덩이 하나 침묵만 지킨다.

부처는 보이지 않는 것, 잡히지 않는 것, 아무것도 없음인데, 제가 무슨 부처인양 가부좌 틀고 저토록 오랜 세월을 앉아 있을까. 있음인가 없음인가. 보임인가 보이지 않음인가. 감인가 옴인가. 꽃잎은 염화시중 휘날리다 안개처럼 이심전심 사라져 버린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 없는 얼굴과 얼굴이 외면하는 듯 용봉산의 쌍용은 고개를 돌려 서쪽 바다를 바라본다. 백년천년 쌓이고 쌓이어도 마냥 그 타령인 바닷물, 이름 하여 해무량(海無量)이라 하던가. 언젠가는 한번 만공 탑을 바라볼 것 같은 그런 자세로 용머리가 되어 굳어버린 바위, 그의 기세가 꼭 용이 서해로 막 뛰어 들어가려고 숨을 한껏 들이마시는 모습이다.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어둠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밝음인가 어둠인가. 꺼짐인가 켜짐인가. 삶인가 죽음인가. 암시인가 귀띔인가. 바람은 풀잎을 울리고 꽃잎을 울리고 어디로 불어 가는지 아무런 말이 없다.

제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해마다 똑같은 방법으로 피고 지는 풀꽃도 무언가를 염원하며 사는 듯 가냘픈 이파리를 팔랑거린다. 용봉산의 쌍용은 얼마나 서해가 그리우면 저 모양으로 굳어버렸을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서해로 갈 수 있는가.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의 길일진대 어느 길로 가야하는가. 어느 길이 아름다운 길인가. 어느 길이 정도인가, 그야말로 어느 길이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인가.

부질없는 차디찬 돌덩이, 제 속을 단단함으로 가득 채운 둥근 돌. “비어있음이란 이름을 가슴에 새겨 안고 얼마를 더 저렇게 앉아 있을 작정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어둠 속에서 꼭 한번은 산이 무너져 물바다가 되는 날에, 하늘로 날아 갈 것만 같은 그런 자세로 만공 탑이 되어야 했는가.

저 돌덩이는 애초부터 저렇게 둥글지가 않았으리라. 비바람에 의해, 오랜 세월에 의해, 뭇 생명들의 부대낌에 의해 비로소 연꽃 위에 저렇게 올라앉게 되었으리라. 저 돌은 아마도 닳아 없어질 때까지 영겁을 저기 저렇게 앉아 있어야만 하리라.

여니 때나 다름없이 나의 생각은 만공 탑언저리에 머물러있고 나의 마음은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다. 합장 반절을 올린 후 나는 만공 탑에 쓰여 있는 글귀를 읽는다. “허공을 무서워하라짤막한 설법의 말씀이다. 이것이 불생불멸의 진리란 말인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무서워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잠시 허공을 향해 명상에 잠긴다. 절대고요가 오히려 더 불안하고 더 초조하듯 절대의 비어있음또한 무서우리라. 그러할진대 너희는 왜 허공을 아랑곳하지 않는가하고 만공은 일갈을 내뱉을 듯 돌덩이의 이마가 햇살에 빛난다.

허무한 것이 인생이고 세상인 것을 그것도 모르고 허우적거렸으니 정말 내가 바보다. 이쯤에서 그만 산을 내려오려 하는데, 만공 탑이 고함을 친다. ‘앞만 보았지 왜 뒤는 보지 않는가큰 기침이다.

깜짝 놀라 나는 만공 탑의 뒤를 돌아보았다. 늘 허공을 울리던 만공의 설법이 나의 뇌리를 꿰뚫는다.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란 법문이 돌에 각인되어 빛나고 있다.

천번 만번 생각한들 한번 행함만 못하리라라는 뜻인가. ‘천 냥 만 냥 많이 가지고 있으면 무엇 하랴 한번 베푼 한 냥만 못하리라라는 의미인가. 내 마음이 내 마음을 추스르는데, 갑자기 허공을 무서워하라라는 법문이 나의 뇌리를 두드린다. 허공은 아무 것도 없음이구나.

인생은 차있음도 비어있음도 아닌 허공이구나. 무소유, 아무 것도 갖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되는구나. 아하! 허공이 만공이요, 만공이 허공이로구나! 소유가 무소유요, 무소유가 소유이구나! 허공을 무서워하라, 외고 외며, 중얼거리고 중얼거리며 산을 내려 왔다.

산문을 나서니 산은 나를 꽉 잡았다가 헐렁 놓아버리는 것 같다. 허무와 허망이 시름시름 깨달음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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