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문단

최미향 서산시대 편집국장
최미향 서산시대 편집국장

#1

어디 먼 길을 떠나는 모양이었다. 검은색 여행용 가방을 든 덩치 큰 남자와 여행용 손가방을 든 아주머니 그리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아저씨 한 분. 일행은 도로가 녹아내 릴 듯 내리쬐는 태양을 받으며 시골 도로를 걷고 있었다.

갑자기 측은지심이 발동한 건 아주머니가 내 차 꽁무니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그 눈빛 하나 때문이었다. 결국 차를 세우고 어디까지 가세요. 얼른 타세요라고 물었다.

가방을 든 두 분만 타시고 빼빼 마른 아저씨는 차창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버스터미널까지만 잘 부탁합니다라며 돌아서셨다. 출발과 동시에 풍기는 술 냄새와 땀 냄새. 갑자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실내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2

중국동포예요, 일자리가 맞지 않아 떠나려고요.” 갑자기 나의 불안한 기미를 감지했는지 아주머니가 묻지도 않은 말씀을 하셨다. ‘그래 미리 이상한 생각은 절대 하지 말자. 그리고 외모를 보면서 판단하지 말라고 엄마가 말했잖니, 최미향!’

뒷자리가 궁금해져서 살짝 룸미러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덩치 큰 남자분과 내 두 눈이 딱 마주쳤다. 무안하여 얼른 한국에 계셔보니 어떠셨어요?”라고 물었다. 남자분 대신 아주머니가 대뜸 살기가 퍽퍽해요하신다.

내가 왜 죄인이 된 심정인지그래도 좋은 분들이 있긴 있지요?” 두 분 모두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시다. ‘, 사기라도 당하신 건가?’ 또 소설을 쓰고 있었다.


#3

목적지에 도착하여 두 분을 내려준 나는 바로 서서히 차를 출발시켜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고함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사이드밀러를 뒤를 쳐다봤는데 아뿔사! 조금 전 내 차에서 내리신 그 남자분이 헐레벌떡 뛰어오시는 게 아닌가.

차를 정차시키고 창문을 내렸다. “아니 젊은 사람이 왜 남의 가방을 가져가고 난리야 난리는”. 영문을 몰라 ? 제가요?”라고 반문했다. “내 여행가방을 교묘히 가져가고 말이야. 젊은 사람이 그러면 못써.”

그러고 보니 두 분이 타실 때 여행용 가방이 너무 커 트렁크에 실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분명 그분들을 내려주었고 걸어 들어가는 것을 멍하니 조금 쳐다보고선 출발했는데 날 도둑으로 몰다니!

모르고 출발한 나도 잘못이지만 그분들 또한 잊어버린 건 매한가지가 아닌가! 아주 몹쓸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 삐딱선을 타시지 정말!’ 날도 더운데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고 잘못하다가는 봉변을 맞기 딱 일쑤였다.


#4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면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더니 도대체 어디서 이런 생떼를 쓰는지 나 참 기가 제대로 막혔다.

알 만한 사람이 말이야 뭐가 탐나서씩씩거리며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는 남자분의 눈알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충혈되어 있다. ! 무섭다! 그러다가 눈알이 바닥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아저씨, 저 그런 사람 아녜요. 트렁크에 실었다는 걸 잊어버렸어요라고 모기소리만큼 작게 말하자 똑바로 살아!” 하는데 갑자기 내 눈에서 터져 나오는 닭 똥 같은 눈물. 모르는 사람은 절대 태우지 말라고 했던 지인들의 말이 그때서야 그렇게 와닿을 줄이야. 오지랖 최고조였던 나를 스스로 자책했다.

그 남자는 가래침을 바닥에 퉤퉤 뱉으며 돌아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부인인 듯한 조금 전의 아주머니가 내게 연신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했다. 아주머니는 그래도 내 마음을 아는 모양이구나. ! 그나마 아주머니의 모습에 조금 수그러든 내 마음,

그래, 어쩌면 이 남자분 한국 사람에게 호되게 당하고 결국 오늘 아침 한국을 뜨는 건지도 몰라. 그래서 아무도 못 믿는 걸거야. 나조차그렇게 생각하니 일순간 억울했던 감정을 넘어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샘솟았다. 어이구, 그렇게 당하고도 참!


#5

그러고 보면 우리는 숱한 시간과 삶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 인연 속에서 내게 화를 내셨던 조금 전 그 남자분의 인연은 또 얼마만큼의 아픈 연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그렇기에 심장 가득 불신이 똬리를 틀고 있었지 않았을까?

비록 남자분 내외는 떠났지만 잠시 마음을 바꾸어 먹으니 금세 또 짠한 마음이 가슴 얹저리를 다독였다. 속으로 되뇌었다.

아저씨, 인생의 고개를 하나하나 넘다 보면 언젠가는 평지가 나온대요. 그러니 지금 비록 속상하고 힘든 그 마음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녹이 슬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무디어진답니다. 그때는 행복한 마음이 무딘 자리를 비집고 들어올 거예요. 그러니 꼭 힘내셔서 열심히 사세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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