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존재들의 잔상-6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 여름철의 저녁밥은 일찍 먹었다. 저녁밥이 늦어 어두워지면 밥 먹기도 불편하고 설거지를 못한다. 당시에 저녁밥은 마루나 안마당에서 먹었다. 마루는 부엌에서 밥상을 들어 내놓기도 가깝고, 무엇보다 저녁시간 때의 방안은 더웠다. 밥 짓느라 아궁이에 지핀 불이 구들장을 데워놔서 찜질방처럼 돼버렸기 때문이다.

당시에 어둠을 밝히던 등잔불은 넓게 트인 마루에선 켜나 마나 어둡기는 마찬가지이고 무엇보다 작은 바람에도 쉽게 꺼지니 애초에 불을 켤 생각을 않는다. 오죽하면 바람 앞에 등불이라 했을까. 등잔불 곁에서 책을 보다가 조심하지 않으면 책장 넘기는 바람에도 등잔불은 꺼진다. 그러니 자연스레 어둡기 전에 저녁밥을 먹는 것이 일상화됐던 것이다.

저녁밥을 먹으면 바람 잘 통하는 집 밖의 마당에 밀짚 방석을 펴고 둘러앉아 땀을 식힌다. 하지만 때를 기다리던 허기진 모기들이 모여드는데 이 모기떼를 쫓기 위해 연기를 피우는 것이 모깃불이다. 밖에서 모깃불을 피울 즘에 방에서도 모기퇴치용 연기를 피운다.

아궁이에서 밑불을 화로에 담고 마른 쑥대 등을 불속에 찌른 후 방에 놓으면 구석 틈에 숨어있던 모기까지 쑥대 연기에 놀라 나오게 되고 이걸 수건이나 옷가지를 휘둘러 밖으로 쫓은 후 문을 잘 닫아놓으면 밤새 모기 걱정은 면한다.

지금 같으면 벽지 그을린다고 기절초풍할 일이지만 그땐 등잔불 그을음과 방에서도 부담 없이 피워대는 담배연기로 벽지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으니 별 거부감이 없었다.

모깃불은 화력은 필요 없고 꾸준한 연기가 요구되니 마른 짚이나 마른 땔감은 금방 타버려 실속이 없고, 보리바심 때 나온 보리까락이 모깃불 감으론 최고다. 보리바심 후 보릿짚은 땔감으로 나뭇간에 쌓아놓고 보리 알곡을 가려 담으면 세상 쓸모없을 것 같은 보리까락만 수북하다.

이 보리까락을 마당 한구석에 묘지의 봉분처럼 모아놓는데 먼지와 섞여있는 보리까락 더미는 완벽한 방수막이 형성되어 장마철에도 물에 젖지 않을뿐더러 화력이 부실하여 불꽃도 일지 못하고 타는 듯 꺼진 듯 연기만 내뿜으니 더없는 모깃불 재료였다. 여기에 반쯤 마른 쑥대를 찔러 넣으면 모기는 얼씬도 않는다.

모깃불을 피워놓고 밤공기가 식어지길 기다리는 어머니는 피어난 연기가 밀짚 방석 곳곳으로 퍼지도록 부채질을 하고 밤하늘 별 보며 재잘거리던 아이들은 하나 둘 슬며시 잠에 빠진다.

밀짚 방석 빈자리에 밤이슬이 축축이 스며들고 제 할 일 다한 모깃불도 사그라질 즘에 큰놈들은 깨워 보내고 어린 것은 들춰 안고 열기 꺼진 방으로 향한다.

조상일 음암면 주민자치회장
조상일 음암면 주민자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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