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성 청소노동자예요”...유품정리할 때가 가장 생각 많아

서산시청년기업 '더클린컴퍼니'(여성기업) 이연미 대표
서산시청년기업 '더클린컴퍼니'(여성기업) 이연미 대표

“‘여자라서 약하다. 여자라서 안된다. 여자라서 힘들다는 편견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도전하며 사느냐가 문제죠.

저는 현재 두 아이의 엄마로서 청소노동자예요. 무한한 도전 속에 힘듦을 헤쳐나가고 있어요. ? 저는 엄마잖아요. 엄마는 강해져야죠. 그래야 내 아이가 살아낼 세상이 조금은 그럴듯하게 멋져지지 않을까요?

이번 기회로 대한민국 여성분들, 도전 의식을 가지고 본인이 원하고 사랑하는 일에 성과를 얻어내십시오. 당당함이 무기인 대한민국 여성들을 응원합니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충청 이남 지역에 올여름 첫 장맛비가 내리겠다는 예보가 있는 가운데 25일 만난 서산시청년기업 청소업체 더클린컴퍼니이연미 대표는 흐림 대신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제 꿈이 뭔지 아세요? 경제적 자유인이 되어, 독거노인을 위한 이동식 목욕차량 봉사를 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기회 균등한 열린 사회를 어린이들에게 줄 수 있도록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남녀 구분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만한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사회를 말예요.

이런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되면 저는 신두리 바닷가로 가서 편안한 쉼을 할 거예요. 서해는 모래가 그다지 없는데 한국의 사막이라 불리는 신두리사구만큼은 고운 모래가 많이 남아 있죠. 신두리는 굉장히 낭만적인 곳이라 노후를 즐기기에는 그만입니다.”

가족을 생각하면 힘들다가도 에너지가 쏟는다는 이연미 대표
가족을 생각하면 힘들다가도 에너지가 쏟는다는 이연미 대표

Q 고향이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입니다. 어린 시절 얘기도 듣고 싶군요.

태안 원북면 신두리 버스 종점에 살았어요. 자연과 더불어 사는 그곳에서 친할머니와 아버지, 새어머니, 배다른 남동생 과요. 물론 유년시절 잠시 같이 살았지만요.

우리 아버지는 굉장히 성실하고 근면하셨어요. 제가 알기로는 쉽사리 일을 쉬어보신 적 없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쉬는 날이 있다면 그날은 우리 가족 다 같이 대청소하는 날이었죠. 또 우리 아버지는 동네 분들과 꿩사냥을 하러 나가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오토바이 뒤에 우리 남매를 태우고 사냥터로 데려가셨죠. 맛있는 음식도 먹고요.

아버지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우리 집 가훈은 교과서적인 아버지 모습 그대로 근면·성실·정직이었어요. 아버지가 할머니를 많이 닮았던 것 같아요. 우리 할머니는 늘 지극한 사랑으로 저를 안아주셨죠. 저는 이런 가족 사이에 태어난 것이 정말 축복이라 생각하며 살았어요.

깨끗하게 변한 창문을 바라볼때마다 자신의 마음이 맑아진다는 이연미 대표 
깨끗하게 변한 창문을 바라볼때마다 자신의 마음이 맑아진다는 이연미 대표 

Q 자연과 더불어 살아서 그런지 감성적이세요. 청소년기는 어떠셨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사구가 멋지게 펼쳐진 태안 신두리가 본가예요. 부유한 유년기를 보냈죠. 혹시 기자님은 바닷속에서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맞아본 적 있으세요? 안 맞아보면 말을 마요(웃음). 얼마나 짜릿한지 몰라요.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바닷속에 누워 빗방울이 터지는 그 모습. 저는 잊혀지지가 않아요.

커서 초등학교 입학을 했어요. 어느 순간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면서 부유했던 우리집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죠. 제가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 밑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던 터라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쯤 제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어요. 제가 살던 집에 불이 났고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죠. 설상가상으로 그 당시 할머니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큰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게 되었죠. 그때부터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됐어요.

제 나이 14,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하여 보호자 없이 서산에 있는 해미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후에는 담임선생님께서 전기세와 버스비를 지원해주셨어요. 제 코가 석 자니 마다할 수가 없었죠.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졸업하고 태안여자고등학교로 입학했습니다. 제 주위에는 좋은 분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그때도 정말 귀한 선생님을 만나 학교에 다닐 수 있었거든요. 1990년대에는 학교 규율이 워낙 강해서 아르바이트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랬으니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학교 자체를 다닐 수 없었겠죠.

철이 좀 일찍 든 것 같아요. 제 곁에 감사한 선생님들을 보면서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닌 걸 알았어요. 그리고 단단한 제자가 될 수밖에 없었고요. 지금의 제가 존재하는 것은 훌륭한 스승님 덕분이라 생각해요.

마음이 어지럽고 분심(憤心)이 들었을 때 청소를 하면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는 이연미 대표
마음이 어지럽고 분심(憤心)이 들었을 때 청소를 하면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는 이연미 대표

Q 고마운 분들이 참 많았네요. 현재 대표님은 청소업을 하고 계십니다. 계기가 있었다면요.

처음에는 경력단절 주부인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청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됐죠. 참 신기하대요. 처음에는 힘들지만 다 마치고 정리된 모습을 바라보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는 거예요.

특히 힘든 일이 있거나 마음이 어지럽고 분심(憤心)이 들었을 때 청소를 하면 제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 시원스럽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삶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제 인생 자체가 바르게 정리되는 느낌이랄까요. 아니면 성취감이라고 할까요.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가 쉬는 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대청소를 했던 경험이 있어 왠지 모를 짠함도 묻어 있었고요.

그런 거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 좋더라고요. 제가 청소를 해드리면 이용자분들은 든든하다라는 말씀과 함께 믿고 신뢰할 수 있다라는 귀한 말씀을 남겨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늘 감동 받다 보니 어느새 자존감이 훅 높아지기도 했구요.

제가 이렇게 변하니 남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 청소하고 있는 모습
사다리를 타고 올라 청소하고 있는 모습

Q 청소업을 하다 보면 보람 있는 일도 많을 텐데 어떠세요.

물론입니다. 몸이 성치 않은 아버님이 계세요. 혼자 지내시는 게 걱정되셨는지 타지에서 매주 한 번 (아버님댁)청소를 의뢰해 주신 따님이 계셨어요. 그 어르신 댁을 다녀오면 그렇게 보람 있을 수가 없었어요.

잘 걷지도 못하셨고, 특히나 욕실에서부터 방까지의 길이 오물로 뒤덮여 있을 만큼 처참했어요. 따님이 택배로 보내준 반찬은 열어보지도 않으신 채 술에만 의지하고 지내신 아버님이셨죠.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시 치매를 앓고 계신 제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어요. 그분을 우리 아버지라 생각하면서 그 일을 해냈어요. 이런 분들 앞에서는 청소에 매뉴얼은 필요 없었어요. 이미 마음이 먼저 갔거든요.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이리되고 싶어 되신 게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저희가 가는 것을 불편해하셨어요. 상당히 어려워하시고 말수도 없으셨고요. 창피해하시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저는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 댁에 청소. 이불 빨래, 오물이 묻은 속옷까지 빨아드렸어요. 또 택배 정리. 냉장고에 줄 새워 어떤 것부터 드셔야 하는지도 세세히 알려드리기도 했죠. 그러던 여러 날. 어느 순간부터 제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정말 보람되더라고요.

쓰레기를 치우고 난 후 뒤돌아보면 깨끗한 모습에 다시 이 일을 하게 된다는 이연미 대표
쓰레기를 치우고 난 후 뒤돌아보면 깨끗한 모습에 다시 이 일을 하게 된다는 이연미 대표

Q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슬픈 일도 겪을 것 같아요.

그럼요. 가장 슬펐던 일은 아버님처럼 믿고 따랐던 그분이 갑자기 돌아가신 거예요. 매주 청소 맡기신 고객님 댁에 그날도 초인종을 눌렀어요. 그런데 인기척이 없는 거예요. 덜컥 무서웠습니다. ‘주무시나? 소리를 못 들으셨나?’ 계속 문을 두들겼죠. 제가 문을 두드릴 때마다 이제 왔냐며 반겨주셨는데. 너무 조용한 거예요.

따님께 전화해 주무시는지 인기척이 없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더니 비밀번호를 알려주시더라고요. 들어갔더니 그동안 많이 힘드셨던가 봐요. 편안한 곳으로 가셨더라고요. 그때는 무서움보다는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저도 우리 아버지 같은 그 고객님과 정이 흠뻑 들었었나 봐요.

꼭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기도를 해드리며 유품 정리를 했어요. 한동안 마음이 정말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네요.

모든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이연미 대표
모든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이연미 대표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모든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자책하지 마시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길 바래요.

이 어르신 댁만 해도 그래요. 거동이 불편하셔서 저를 일주일 동안 기다려 집을 치웠던 고객님이신데 그 빈자리가 너무 크더라고요. 몇 안 되는 살림살이와 가득한 술병, 그리고 담배, 성한 것 없는 옷 몇 가지까지. 그것을 치우며 알코올성 치매로 힘겹게 떠나간 우리 아버지가 어버랩되더군요.

어쩌면 우리 아버지와 같은 상황이 아닐까 싶어서요. 괜스레 부족했던, 죄송했던 마음을 담아 그 어르신의 옷 몇 가지와 보따리 짐을 챙겨서 소각장에 보내드렸어요. 허름한 옷장은 분해해서 정리해드렸고요.

아버님이 계셨던 공간을 텅 빈 곳으로 만들어 드렸는데 생각이 너무 많아지더군요. 쓸쓸하고 허무했구요. 처음 만났을 때 부끄러워하시던 모습이 너무 생생했어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먼 길 떠나셨으니.

따님이 연신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아뇨. 저를 기다려 주시는 아버님이 더 감사했습니다라고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리스의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는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라고 했잖아요. 아버님은 분명 간절한 하루를 기원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따님과의 행복한 시간을 바랐을지도 모르고요.

청소업을 하면서 가슴 아픈 장면을 만날 때마다 저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귀하고 소중하게 쓰자고 다짐해요. 소홀하거나 가볍게 말구요.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그러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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