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④

아피아 가도
아피아 가도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참가한 우리 선수단이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빨간 유니폼을 입고 벌떼처럼 상대를 제압하여 4강 신화를 이뤘던 1983년 대회의 붉은 악마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했습니다.

그땐 수업을 빼고 학교 강당에서 단체로 TV시청을 하며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였던 좋은 추억을 안겨주었죠. 저는 동네에서 축구를 하다가 부상을 입어 깁스를 하고 이번 경기들을 봤습니다. 동네선수(?) 입장에서, 유명선수 없이 정신력과 조직력으로 선수단이 한 몸이 되어 성과를 이뤄낸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알려진 스타 중심으로 하는 것도 좋지만 무명 선수들의 예상할 수 없는 개인기와 조직력을 발휘할 때 나오는 역동성은 축구를 더 재미있게 하죠. 4강의 기적을 만들어준 우리 선수단에 박수를 보내며,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는 많은 무명 선수들을 위해 희망의 길을 계속 개척해 주길 바랍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고전적인 격언은 지금도 자주 인용됩니다. 이 격언을 있게 한 이가 클라우디우스인데, 기원전 4세기와 3세기에 살았던 로마의 정치가이자 건축가였습니다. 그의 주목할 만한 업적은 로마의 초기 도로 중 하나인 아피아 가도의 건설이었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도로의 설계자이자 감독으로 보여준 그의 집념은 후대에 자신의 운명을 직접 개척해 간다는 상징으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역경에 직면했습니다. 사고로 시력을 잃었기에 장님으로 놀림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꿈을 이뤄가는 방해물과 용감히 맞서 싸워 나갔던 것이죠. 그런 피땀 어린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위대한 길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만드는 장인이다’(Faber est suae quisque fortunae)는 말을 실제로 살아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의 이름을 붙인 아피아 가도를 통해 로마는 제국의 수도요 정치적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 잡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위의 격언과 연결되는 또 하나의 인물은 로마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장 강하고 탁월한 존재인 이성을 존중한 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교를 박해했지만, 플라톤이 말한 이상적인 철인정치를 떠올릴 정도로 인간을 깊이 통찰한 사상가였죠.

그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전염병과 자연재해, 내부 권력투쟁과 주변 민족과의 갈등에 직면했습니다. 그럼에도 회피하지 않고, 건강치 못한 몸으로 전쟁터를 누비며 스스로를 소진시키듯 국정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얕은 처세술이나 무력으로 위기를 넘기기 보단, 자신의 인성을 기르고 덕을 실천하며 자기수양과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몸소 살았습니다. 직접 쓴 <명상록>은 이런 고민의 흔적이 읽혀지는 작품이자 자기성숙을 위한 성찰과 헌신을 반영합니다. 역경에 직면한 그는 내면의 힘과 윤리적 올바름으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가려고 부단히 애를 썼던 것이죠.


역사는 영웅에 의해 만들어진다지만, 그 영웅은 처음부터 유명인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무명내지 익명으로 보내며 자신을 단련해 왔던 것이죠. 이번 축구에서 무명의 선수들이 그것을 보여줬고,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을 보낼 수 있는 것도 그런 순국선열 덕분입니다.

무명용사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발굴되지 못하고 어느 산골짜기에서 누워계실 분들의 희생 덕에 대한민국은 존재하고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성숙한 행동이 좋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공동체의 선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희생하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의 내가 누리는 혜택이 가능했습니다. 아빠 찬스를 이용하는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다르죠.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있습니다. 내 인생과 세상살이에 운이나 끈이 많이 작용한다는 뜻이죠. 그러나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영향을 주고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사실처럼, 운은 3정도만 따르고 우리의 노력을 7로 만들어가는 것이 내 인생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각자 자기 운명을 현재형으로 만들어가는 명인이니까요.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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