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와 함께 하는 인문학 산책-③

메디치가문-festina lente

땅을 박차고 우주로 오른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는 기쁜 소식에 과학자들에게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강대국들이 기술이전을 꺼리는 척박한 여건에서 기적을 일궈낸 그분들의 노고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92년 우리별 위성이 발사된 후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반복하며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욱 소중합니다. 힘을 합쳐 땀을 흘린 분들 덕분에 과학과 첨단기술도, 문화예술 분야도, 스포츠도 이젠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분야가 있다면 정치가 아닐까 합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오랜 시간 고통을 감내하며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높은 뜻을 세우고 실력을 닦아가야 할 텐데, 얇은 처세술로 상대를 비방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며 기득권을 누리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리며 소의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말처럼, 뚜벅뚜벅 걷는 큰 지도자가 잘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는 격언을 생각합니다. 기원전 1세기에 오랜 내전을 종식하고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태평성대를 열었던 아우구스투스를 떠올리는 말이죠.

원래 이름이 옥타비아누스였던 그는 양아버지이자 로마의 영웅이었던 카이사르가 암살되며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종식시키고, 초대황제로 등극하며 존엄한 이’(Augustus)란 칭호를 받습니다.

그는 정치와 군사적인 면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겼지만 문학적 재능을 겸비한 작가로서 이 격언을 자주 인용합니다. 전쟁터에서 지도자의 무모함이 얼마나 위험한 것임을 알고 있었고, 카이사르가 너무 바쁘게 살며 서두르다가 죽음을 피하지 못한 것을 교훈으로 삼았던 것이죠.

당시 원로원 의원들은 아르테미도로스라는 사람을 써서 카이사르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비밀문서를 보관하던 아르테미도로스가 평소 카이사르를 무척 존경하고 있었기에 두루마리 편지로 그 계획을 미리 전달해 줍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바쁜 일정에 쫓겨 그 편지를 미처 읽지 못해 비극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 사건으로 아우구스투스는 전시상황과 위기에서 신속함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사는 신중함과 신속함이 좋은 지도자를 만드는 덕목이라 생각했죠. 그래서인지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 최고의 명가였던 메디치 가문도 이 모토를 선택해 상징문장을 만들었습니다.

모순적인 천천히서둘러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요? 서두르는 것은 누구든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 바쁜지를 질문하는 자세는 아무나 가질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목적과 방향에 늘 물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빨리빨리에 그냥 빠져드는 것은 스스로 불행해지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철저히 혼자 있는 천천히의 시간을 잘 보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핸드폰이나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 혼자 있는 법을 배우기 너무 힘든 세상이 된 거 같습니다. 잠시도 혼자 있기를 내버려두지 않는 세상입니다. ‘서둘러침묵과 고독을 통해 자기중심을 찾으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들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의 시간을 겪어낸 시행착오와 축적의 결과가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은 모순적인 세상이지만, 이럴 때 일수록 공동체를 위해 바른 뜻을 세우고 실력을 키우며 견디어 내는 예비 지도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언젠가 좋은 기회가 올 것을 믿습니다. 우리 함께, 천천히 서둘러 봅시다!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해미국제성지 한광석 신부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