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치 근거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로 파악

1949년에 결성된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요시찰 좌익세력 예비검속대상자, 보도연맹원 및 본인도 모르게 경찰이 할당제로 보도연맹원에 가입되어 있는 자, 남로당원 등이 보도연맹원으로 변질되어 약 5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일자는 1950712일 서산경찰서 철수 일을 추정하면 79~12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1950812일 미 병참사령부가 미8군에 보낸 통신문에도 충남 서산에서 보도연맹원 400명이 트럭에 실려 대전으로 끌려가는 장면이 미군 군속에게 목격된 사실이 있다는 내용과 해미 참고인의 진술 내용에 트럭과 버스10여 대에 사람들이 가득실려 홍성 쪽으로 가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성연면 일람리에 거주하고 있는 목격자의 진술은 경찰 10명이 100여명을 메지골로 끌고 가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내용을 볼 때 서산에서 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자는 대전형무소 이송 자를 포함하여 메지골, 양대리 다리밑, 소탐산 등에서 약 500명이상이 학살 추정가능하다.

수복 이후 발생한 부역혐의 사건으로 희생된 자는 약 1,500명으로 추정된다.

19809월에 서산경찰서에서 작성된 신원기록심사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는 자는 인민군부역자 또는 자수자 좌익세력 처형자, 사상범 등이다.

심사보고서에 서산, 태안 부역혐의 사건으로 처형자로 기재되어 있는1,865명 중 조사과정에서 1,140명의 희생사실여부를 참고인 진술을 통해 확인하였다.

서산시의 현재 신원기록심사보고서상의 희생자는 1,025명이다.

그러나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서산시 조사대상 지역이 팔봉면, 지곡면, 해미면, 고북면 4개면만 조사가 이루어져 정확한 희생자 숫자는 예측할 수 없으나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결정서에 신원기록심사보고에 기재되지 않은 희생자를 감안하면 보도연맹사건 희생자를 포함 2,000명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술되어있다.

학살지역을 살펴보면 성연면 일람리 메지골은 보도연맹 및 부역혐의자도 학살한 지역이며, 보도연맹보다 부역혐의 희생자가 훨씬 많이 희생된 지역이다.

소탐산과 양대리 다리 밑 지역은 보도연맹사건과 인민군 점령기에 적대세력 학살지역이며, 현재 유해발굴지역인 갈산동 교통호는 서산경찰서에 연행되어 유치한 서산읍, 인근 인지면, 지곡면, 음암면 등 부역혐의사건으로 연행되어 200여명이 학살된 지역이다.

서산시의 학살지역은 주로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이며, 일부지역은 공동묘지, 바닷가 등 30여 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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