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대 문단

박영춘 시인
박영춘 시인

산길 초입부터 고목들이 넘어져 있는 게 보인다. 나무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골다공증을 앓았는지 속이 텅 빈 채.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누워버렸다. 어떤 것은 벌써 수십 년이 흐른 듯 검붉은 흙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바람 타고 날아온, 키가 크고 색깔이 하얀 미국 민들레꽃이 썩은 나무밑동 위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고목의 모습은 왠지 겸손하다.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죽는 순간까지 명예를 남기려 하는 미망에 사로잡히는 인간들처럼 나무들은 염치없지는 않다.

자신을 키워 주었던 어머니인 산에게 아무런 바람 없이 겸허하게 안겨 있을 뿐이다. 산 문턱을 지나 한참을 걸었다. 들판에는 4계절 철철이 꽃이 핀다. 민들레꽃, 아기꽃다지, 복숭아꽃, 개나리꽃, 매화꽃, 냉이꽃, 제비꽃, 산수유꽃, 비비추꽃, 산밤꽃, 들국화, 산국화 온갖 꽃들이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이름을 아는 꽃도 많지만 이름을 모르는 꽃이 훨씬 더 많다. 산 안창에 들어서니 원추리꽃이 제일 먼저 달려와 샛노랗게 나를 반긴다.

훤칠하게 서서 살랑 벌을 맞이하고 보낸다. 썩을 대로 썩은 고목의 곁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독경소리처럼 엄숙하게 들리어온다. 전생의 모습을 알려면 오늘의 자신을 보라고 했던가. 썩은 고목을 보니 나무의 전생은 아마도 흙이었던가 싶다.

물가에 가면 옷깃이 젖듯이 산골짜기에 들어서니 마음이 젖는다. 온갖 꽃들의 향기에 흠뻑 젖는다. 마치 검은 천에 흰 물감을 물들이듯 검은 마음에 하얀 향기가 촉촉이 젖는다.

전생에는 남자였던지 꿈에는 서서 오줌을 눈다는 여자 보살님 혼자 칩거하는 자그마한 암자가 보인다.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두 암자가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청산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늘 한결같이 매번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것이 산이다. 마다 않고 받아드리는 관용의 산 그래서 산은 싫증이 안 난다. 암자는 텅 비어 있는 듯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솔 냄새, 풀 냄새, 꽃 냄새의 생기로 넘쳐흐르고 있다.

쓰러진 나무기둥 밑에도 천남성꽃대가 허리를 구부리고 기어 나온다. 짓누르고 짓밟아도 다시 일어나 꽃을 피우는 풀을 보면 부끄럽기까지 하다. 감각만 있고 감동은 없는 세상. 숨 막히는 매캐한 냄새만 부글거리는 세상을 잠시 떠나 꽃필 때는 마냥 걷는 것도 괜찮으리라. “꽃필 때는 춤추는 게 좋다고 성철스님은 노래했다.

걷기는 자연의 변화를 느끼면서 환경과 친해져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해서 좋다. 길동무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동행자가 없으면 자연과 벗하면 된다. 경제적 부담이 되지 않고 부작용이 없어 좋다. 또한 걷기는 육체건강 뿐만 아니고 정신건강에도 매우 좋다. 마음의 평정을 갖는 데도 좋다.

경쟁이 강조되는 속도사회에서 조금은 여유 있게 느리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안겨주는 걷기는, 이렇게 몸에 건강을 주고, 마음에 평정을 주고, 정신에 영적 삶을 순화시켜주는 고마움이 있다. 더구나 꽃필 때 마냥 걷는다는 것은 활력 유산소호흡에 미네랄이 많아 좋고 향기까지 곁들이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걷기는 부작용 없는 최고의 건강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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