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대 문단

바람이 나의 등을 밀면 자전거는 바람을 앞질러 황사를 뚫고 달려 나간다. 경지정리가 반듯반듯하게 참 잘된 중앙농로를 따라 땅에 납작 엎드리어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등을 타고 자전거는 거침없이 스르르 들판을 달린다.

중앙농로 끄트머리로 안개와 황사의 뒤범벅이 속에 아른거리는 두 그림자가 보인다. 내 젊은 날 군에 입대할 때 어깨띠를 두르고 연실 뒤돌아보던 고향의 아버지 어머니 모습 같다. 논두렁에 새파란 제비꽃들이 줄을 지어 황사바람을 피하느라 고개를 이리저리 내젓고 있다.

삼월 삼짇날이면 돌아온다는 제비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날아오다가 황사를 피해 되돌아갔는가. 농약냄새 때문에 아예 오지를 않았는가. 오랜만에 들판을 거닐어보니 마음이 허전하고 사무치도록 물 찬 제비의 비행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요즘의 농촌 길은 거의가 다 포장되었다. 수많은 오솔길과 고샅길엔 민들레꽃이 생글생글 피어 길가에 다소곳이 서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마을 고샅길 발자국 옆에 샛노랗게 민들레꽃이 바람에 한들거리고 흰나비 노랑나비가 나풀나풀 춤을 추는 모습이 참으로 꿈결 같았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낙원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6,25의 화약 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을 때인데도 나에겐 그래도 그때가 낙원처럼 그립다. 그때는 민들레꽃도 강아지 똥도 흔했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에 개는 살림 밑천이 되었다. 개를 팔아 그릇을 사면 잘 산다는 미풍이 있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강아지 똥과 민들레 씨와의 극적인 만남과 삶에 대한 필자의 구구 절절한 졸작 시 한 구절은 지면상 소개를 생략하기로 한다. 민들레꽃은 항상 우리 곁에서 산다.

들에서 자라나 들에 피는 들꽃. 두메산골 물레방앗간 마차길 옆에 납작하게 엎드린 한 떨기 들꽃. 봄볕아래 무참히도 짓밟히고 또 짓밟혀도 굴하지 아니하고, 칼로 도려냄을 당해도 다시 뿌리에서 싹이 돋고, 차례대로 샛노란 꽃을 피우고, 사람에게 온 몸 다 받쳐 약이 되어주고, 벌 나비에게 꿀을 나누어주고, 잎과 줄기에 젖을 내어 사람들의 머리칼을 검게 해주고, 종기에 약으로 쓰이고, 나중에는 하얀 꽃가마 타고 바람 따라 삼천리 방방곡곡에 고루 흩어져 산다.

긴 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는 오매불망 일편단심 민들레꽃을 일러 사람들은 아홉 가지 덕을 간직한 꽃이라고 한다.

님 만나기 쉬운 오솔길마다 바람 타고 바람처럼 와서 바람 같이 살다가 바람 같이 길 떠나는 민들레꽃. 님 만 평생 그리워하다가 흰 머리칼 휘날리며 바람 따라 산모롱이 지나 정처 없이 길 떠나는 민들레꽃을 두고 사람들은 일편단심이라 노래한다.

어느 꽃 하나인들 아픔하나 없이 피었겠으며, 어느 꽃 하나인들 노력하나 없이 피었으랴마는 민들레꽃만은 유독 뭇 사람들의 발굽에 짓밟히고 또 짓밟혀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슬며시 다시 일어나 생글생글 웃는다. 민들레꽃은 이른 봄 찢어진 초록치맛자락을 길바닥에 펼쳐놓고 그 위에 샛노란 꽃대를 오롯이 피워 올린다. 그렇게 곱디고운 민들레꽃에게 황사는 날아와 마구 얼굴을 할퀴어 놓는다. 민들레꽃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다가 필자는 민들레꽃을 다음과 같이 예찬했다.


 

짓밟히고 짓밟혀도

그래도 다시 일어남은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기 위함이리라

 

어느 꽃 하나인들

아픔 하나 없이 피었겠으며

어느 꽃 하나인들

노력하나 없이 피었겠냐마는

길가 민들레꽃만은 유독

뭇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고 또 짓밟혀도

앙심 품지 않고

눈 비비고 다시 일어나

괜찮다는 듯 생글생글 웃는다

 

병폐 없는 마음

악의 없는 마음

살갑고 정다운 마음

곱디고운 민들레 꽃향기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참고 용서하며 살라는 교훈을 주며

문전옥답 마다하고

길바닥 발자국 옆에서

헤프지 않은 웃음으로 인사하며

찢어진 초록치마 흙 묻은 노랑저고리

다 헤진 검정고무신 신고 서있을지언정

결코 녹록치만은 않은 민들레꽃 너로구나

시인 박영춘
시인 박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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