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멋진 친구 미용아 고맙다, 너로 인해 봉사를 만났다”

리안헤어 서산중앙점 류영인 실장
리안헤어 서산중앙점 류영인 실장

어린 초등생이 새벽 6시 어슴푸레한 새벽길을 따라 장애인들이 살고 있는 시설로 미용 봉사를 떠났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떠난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가기 싫은 곳으로 가는 저의 발걸음을 상상해 보세요.

졸린 눈을 비벼가며 들어갔던 그곳에서 저는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너무도 밝은 얼굴로 저를 맞아주셨는가 하면 그중 한 분은 저를 안더니 복지관을 막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스물다섯 청년 리안헤어 서산중앙점 류영인 실장은 그날의 온기가 아직도 자신의 가슴 한구석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고 했다.

아마 오늘까지 행복한 마음으로 봉사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때 그분들의 반가워했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라며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힘들고 소외된 이웃이 너무 많아 가슴이 아픕니다. 그분들에게 저의 작은 달란트가 행복이 된다면 저는 앞으로도 항상 그분들 곁에 있을 겁니다라며 순한 웃음을 지었다.

리안헤어 서산중앙점 어머니 한선미 대표와 류영인 실장(사진=문수협)
리안헤어 서산중앙점 어머니 한선미 대표와 류영인 실장(사진=문수협)

Q 앳된 모습인데 벌써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충남 서산에 사는 스물다섯 살 류영인이라고 합니다. 11녀 중에 첫째로 태어나 현재는 리안헤어 서산중앙점에서 일하고 있어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경제적인 자립을 잘하는 편이고 봉사가 몸에 밴 사람이라고 할까요. 이 모든 것들은 부모님의 영향이 상당히 컸던 것 같습니다.

제가 꼬꼬마일 때부터 엄마는 저를 데리고 봉사현장으로 다니셨어요. 그리고 항상 하시는 말씀이 남에게 손 벌리지 마라고 하셨죠. 그러려면 경제적 자립이 돼야 한다고요. 또 그럴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죠. 그러고 보면 제 나이치고 꽤 괜찮은 편 아녜요(웃음).

 

Q 어린 시절부터 봉사가 일상이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라도 있었나요?

미용봉사를 많이 하신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봉사에 발을 들여놨어요. 하지만 청소년이 되면서 또래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소방서, 동사무소 등 관공서를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봉사는 사실 그런 게 아니었는데 말예요.

그렇다고 자의적으로 봉사를 하기에는 너무 어렸고요. 봉사라는 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미용을 하면서 의무적인 봉사는 멈추고 정말 제가 좋아서, 기다려지는 봉사를 하게 됐죠. 마치 제가 봉사를 받고 온 느낌이 드는 그런 봉사를요.

리안헤어 서산중앙점 직원들과 함께
리안헤어 서산중앙점 직원들과 함께

Q 미용을 하게 된 계기가 아마도 어머님이 미용실을 운영해서 그렇겠죠?

그랬겠죠. 현재 저희 미용실 대표님이 바로 어머니세요. 전적으로 대표님의 영향이 컸었죠. 제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대표님이 아니고 실장님이었는데 자주 가게에 들렀어요. 그럴 때마다 손님의 헤어스타일을 손질하시면서 얘기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존경스러워 보였어요. 딱 거기까지였어요.

제가 미용업계로 직접 뛰어들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어머니께서 적극 권하셨는데 저는 죽기보다 싫었거든요. 물론 미용실 손님들과 대화하고 웃을 때는 좋았지만요.

제가 어머니 자리까지 갈 수 있을까 싶었어요. 과정이 힘들잖아요. 지금 생각하니 아마도 어머니께서 옆에 끼고 같이 봉사하고 싶어서 더 등을 떠민 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어머니 한선미 실장과 류영인 실장이 이른 아침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문수협)
어머니 한선미 실장과 류영인 실장이 이른 아침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문수협)

Q 어머니께 감사해야겠어요.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미용을 사랑하게 됐잖아요.

(웃음)맞아요 맞아요.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미용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미용)공부라곤 아예 안 했죠. 자격증 필기시험은 4, 실기시험은 자그마치 10번이나 떨어졌어요. 대단하지 않아요?(웃음).

슬럼프도 많이 왔고요. 혼자 화장실에서 울고 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미용은 정말 밉기만 했었죠. 오죽했으면 어머니에게 핑계를 대곤 다른 직업으로 도망쳤던 적도 많았어요.

근데 참 이상하죠. 다른 곳으로 피신했는데 문득 파마가 말고 싶고, 샴푸가 하고 싶고, 손님과 대화 하던 시간이 너무 그립더라고요. ‘어디 살짝만 더 해볼까!’ 했던 게 지금까지 와 버렸네요.

 

Q 어머니 때문에 봉사를 접했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봉사가 좋아서 봉사하게 된 계기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 그럼요. 초등학교 때였어요. 어머니를 따라 미용봉사를 갔어요.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는데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투덜거렸겠죠.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잔뜩 인상 찌푸렸던 제 모습이 삽시간에 사라져버렸어요. 그곳에 모인 분들이 저를 안고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약간 무섭기도 했어요. 아무튼, 아주 묘한 기분이었죠. 그중 한 분이 저를 데리고 구경시켜준다며 복지원을 돌았던 기억이 있어요. 봉사가 끝난 후 그날 밤 제 일기장에는 대상자들의 행복했던 모습을 기록했던 것 같아요. 그게 계기라면 계기일걸요.

어린이 손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꼬마 손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Q 그러고 보면 어머님이 참 대단하시네요. 종일 일하시면서 쉬실 만도 한데 새벽부터 봉사하시고. 어머니와 함께 봉사하시면서 힘들거나 보람 있었던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어릴 때부터 봉사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봉사)몸에 밴 거 같아요. 꼬맹이 때부터 항상 저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힘들고 아픈 분들 곁에 니가 가진 재능을 나누고 살아야 된다고 하셨으니까요. 감히 어머니 말씀을 어찌 거부할 수가 있겠어요(웃음).

사실 힘든 부분이라면 저 같은 경우 다리 통증이었어요. 미용은 항상 서 있기 때문에 다리가 정말 아파요. 특히 어릴 때는 놀고 싶기도 한데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어머니를 따라 종일 서 있으려니 더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때로는 화장실에서 제 다리를 붙잡고 울기도 했으니까요.

, 이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지는데요. 중화독이 온몸에 올라와 울면서 벅벅 긁었던 기억이요. 절대 잊을 수 없죠.

그렇다고 다 힘든 것만도 아네요. 보람이라면 오랜 공백을 깨고 군 제대 후 매장에 출근했을 때인데 마치 저를 눈 빠지게 기다렸던 듯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들이에요.

10년째 오시는 교수님 부부도 있었고요. 봉사하면서 오랜 시간 보아온 서림복지원 분들도 계셨죠. 사실 시설에 계신 분들을 볼 때는 좀 더 열심히 할걸하는 후회 같은 것도 들었어요.

 

Q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요.

그럼요 있죠. 대학 1학년 때는 미용이 싫다 보니 학교 다니는 게 너무 싫었어요.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 안 갔었던 때도 많았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해요.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랬는지 갑자기 미용이 막 좋아지는 거 있죠.

그 후부터 그렇게 싫어하던 학교가 좋아지더니 졸업하고 나선 너무 가보고 싶은 거예요. 어느 날 교수님을 뵐 겸 겸사겸사 학교로 갔어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성공한 선배님이 오셨다라면서 후배들 앞에서 한마디 하라는 거예요. 아 떨리면서도 얼마나 흥분되던지요. 그때부터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교수님께 자주 전화를 드렸어요.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팀에 출연한 가족들과 함께 (사진=문수협)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팀에 출연한 가족들과 함께 (사진=문수협)

Q 실장님에게는 미용과 봉사가 무엇일까요?

제게 미용은 제 인생에 멋있는 포인트를 주는’‘친구고 봉사는 ()’입니다. 이 두 가지는 참 아이러니해요. 정말 힘들기도 하지만 떼려고 해도 떼어낼 수도 없는 샴쌍둥이 같다고나 할까요(웃음). 늘 붙어있는 이 친구는 남들보다 더 멋있게 저를 비추어주곤 해요.

이들로 인해 함께 봉사할 수 있는 요즘이 너무 좋습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팀과 함께 미용봉사를 하고 있어요. 그곳에 가서 힘들고 아픈 분들에게 생애 가장 눈부신 날을 만들어준 프로젝트인데 가슴 저리도록 기분 좋아요. 또 새로운 분들과 교감도 하고요. 제가 하는 일을 접목해서 봉사하다 보니 많은 것을 배울 기회기도 합니다.

 

Q 가장 좋아하는 글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이 문구를 가장 좋아해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제 묘비명에도 들어갈 글이에요(웃음) 그렇다고 회피성은 절대 아니랍니다. 다만 제가 힘들거나 슬럼프가 왔을 때 혼자 되뇌어보는 글인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한 뼘 더 성장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제 꿈요? 10년 전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5층짜리 미용건물을 만들어서 1층에는 카페, 2층은 미용실, 3층은 네일샾, 4층은 피부관리실, 5층은 회장실(웃음). 10년 전쯤 대표님(어머니 한선미)께 옥상에서 노을을 보며 꼭 만들어 드린다고 약속했었거든요. 아마도 대표님은 장난인 줄 알고 계시겠죠.

미용봉사를 하면서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는 류영인 실장
미용봉사를 하면서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는 류영인 실장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다들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미용 디자이너 시험을 치를 때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가족들이 다들 힘들어하고 있는 와중이라 상중 중간에 나와 시험을 쳤고 결과까지도 차마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상심이 컸던 일이었어요. 큰일을 당한 이후로는 가족 중 누가 아프다는 얘기만 나와도 놀랄 정도로 트라우마가 있어요.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봉사하면서 만난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팀원들, 이분들을 만나면서 미용이란 직업이 한층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앞으로도 늘 함께할 분들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 저를 이만큼 성장시켰고 또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 주셨어요. 늘 감사드립니다. 잘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지인들 모두 모두 감사해요.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미용봉사를 하고 있는 류영인 실장
미용봉사를 하고 있는 류영인 실장
류영인 실장이 딴 자격증들
류영인 실장이 딴 자격증들
봉사를 하면서 만난 분들과 함께 (사진=문수협)
봉사를 하면서 만난 분들과 함께 (사진=문수협)
사랑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사랑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리안헤어 서산중앙점 류영인 실장
리안헤어 서산중앙점 류영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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