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며 기다리며

장연덕 칼럼니스트
장연덕 칼럼니스트

시골에 내려와 보면 이 무섭습니다. 대도시보다 규모가 작은 곳에 오면, 그 입의 위력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정서의 차이에 놀라게 됩니다.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그 와중에 남을 헐뜯는 사교모임이 나른하게 이어지는 그 일상이, 한 해 두 해가 가도 똑같이 이어진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면,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됩니다.

일상은 나른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커피숍의 별로 영양가 없는 대화가 가득한 한 무리의 사람들과 같지만, 이상하게도 자살은 꾸준히 일어납니다. 왜일까요?

딱히 경쟁할 것도 없고, 치열하게 쟁취할 것도 없지만, 마치 그럴만한 목표가 있는 듯이 파벌을 형성하고, 자기편이 아닌 사람, 외지에서 온 사람을 헐뜯는 입이 통일되며 견고하게 강화되는 양태는,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요?

도시에서 청년들이 시골에 와서 귀농을 하려고 해도 번번이 접고 물러나는 원인 중에 텃세라는 게 있습니다. 발전기금을 강요하거나, 발전기금을 원하는 액수대로 내지 않으면 중요하고 당연히 알아야 하는 일정을 고의적으로 일부 청년에게만 그 전달을 배제시켜서 세간의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을, 지속적인 교육과 문화생활의 부재라고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무지성이나 집단이기주의, 자기 가족만 생각하는 오래되고 악한 습성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고, 책을 읽어도 되는 여유가 있고, 더 배울 수 있는 여력이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면 자신이 왜 우울한지, 이 감정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파악할 공간이 있겠지만 농업이라는 범주 안에서는 여러모로 그 여유가 부족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시의 즐비한 학원, 대학, 그리고 여러 문화센터를 비롯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공간들을 거치다 보면 주로 보이는 모습은, 조용히 책을 읽으며 자녀의 하교를 기다리는 부모, 함께 책을 읽는 부모와 자식, 노년의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천천히 식사를 하고 산책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들큰하게 혹은 묵지근하게 무엇인가를 마시고 오래 눌러앉아 누군가를 공공의 표적물로 삼아 공공의 사냥이라는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 지자체의 역할이, 도심에서 벗어난 시민들의 생활에 더욱 깊고, 섬세하게 들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책과 문화생활, 그리고 멀리 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예술에 대한 접점을 제공하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사치의 대상이 아니라, 생존의 대상입니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관점을 평이하게 고르게 넓게 펼쳐놓고 모두에게 적용시켜본다면, 나에게 있어서 행복한 것은 곧 남에게도 행복한 것입니다.

배만 불러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노예,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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