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 –140

특별한 노력 없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 소중함을 간과하기가 쉽다. 한시도 빠짐없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공기처럼.

에픽테토스는 <담화록>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네가 사랑하는 건 필멸이고, 너의 것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라. 지금 잠시 너에게 주어졌을 뿐, 제철에 나는 무화과나 포도처럼 되돌릴 수도 없고, 영원하지도 않다.”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술(데런 브라운) 중에서-

교육기관의 돌봄 기능과 급식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방학 때마다 혹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이후에도 그것이 중단되는 휴일마다 반복적으로 그것을 인지한다. 특히나 방학처럼 그것의 부재가 길어지면 그 고마움을 더욱 여실히 느낀다.

휴직 기간 동안 가장 아쉬웠던 것은 점심 급식이 없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복직 후 가장 즐거운 시간은 역시 급식시간이다. 많은 주부들이 느끼는 바처럼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기 때문이다.

띠로리~ 방학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삼시 세끼를 준비하고 치우는 일이다. 일하는 엄마라 학교 돌봄과 유치원 긴급돌봄을 이용할 수 있지만(돌봄교실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그 기간에 도시락 싸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상할 것을 염려하여 당일 아침에 볶고 굽고 끓이려면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것이 필수적이다. 도시락을 같이 싸겠다고 약속한 남편은 오늘도 일어나지 못했다. 가족들이 여전히 쌕쌕거리며 꿈속을 헤매는 동안, 졸린 눈을 비비며 홀로 주방으로 향한다.

아이들이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도 식단에 따른 급식이 위안이 됐는데 방학은 외부의 조력 없이 온전한 가정의 몫이다. 오늘은 무슨 반찬이 좋을까.

겨울이라 국물 없이 보내기 미안해 된장국, 콩나물국, 미역국, 어묵국, 하다못해 숭늉이라도 끓여 보낸다. 팔팔 끓는 상태로 보온통에 넣으면 점심시간까지 온기를 유지한다. 반찬은 계란말이, 멸치볶음, 새우볶음, 감자볶음, 브로콜리볶음, 버섯볶음, 애호박볶음, 시금치나물, 숙주나물, 소시지, 치킨너겟, 김치, 깍두기, 백김치, 연근조림, 장조림 등등. 여기에 구운 김 하나 추가하면 도시락 완성! 치킨너겟과 소시지가 식어서 맛이 없었다는 딸의 하소연을 들으니 기관에서 유일하게 제공해주는 따뜻한 밥이 감사하다.

도시락 준비가 끝나면 오후 간식도 준비해야 한다. 딸기, 바나나, 사과, , 샤인머스켓, 방울토마토, 블루베리, , 한라봉. 가급적 과일을 보내고 가끔은 마카롱이나 쌀과자, 주스도 보낸다.

제법 숙련된 솜씨지만 한 시간이 빠듯하다. 7시가 되면 아이들을 깨우고 나 또한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남편은 헐레벌떡 씻고 신속히 준비한 후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그 모든 것을 15분 만에 해낸다. 대단하다.

빨리 준비시켜 밥을, 안되면 시리얼이라도 먹여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한데 깜깜한 아침이라 아이들이 잘 일어나지 못한다. 출근시간에 대한 조바심으로 아이들을 닥달하는 내 모습을 수시로 발견한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 아이들의 방학이 엇갈려 도시락을 하나씩 싸면 됐는데 다음 주부터는 두 명분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단체 맞춤도 좋으니 도시락과의 전쟁에서 해방되고 싶다. 학교에 급식이 도입되었을 때 엄마들(또는 아빠, 할머니, 누나, 본인 등 도시락을 싸야 했던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후련했을까. 많은 엄마들이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단체 급식 만세!! 도시락 해방 만세!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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