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충남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참담하다. 혹여나 하는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대전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박선준)1일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유체동산인도 청구 항소심에서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내렸다.

약탈한 물건은 본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옳다는 사회통념상의 기본원칙이 이번 재판에서는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음에도 사실 우려했던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한민국 검찰이 원고 부석사에 대항하는 피고라는 점이었다. 일본 관음사에서 부석사 불상을 훔쳤던 도둑은 이미 범죄에 대해 형사처벌을 받았다.

남은 문제는 도난 불상의 반환인데 여기서 원래 주인에게 돌려달라는 원고 부석사의 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원래 주인인 부석사와 수십 년간 무탈하게 소유하고 있었으니 자신들에게 소유권이 있다는 일본 관음사. 소송은 원고에 부석사가 나서고 피고에는 상대 당사자인 일본 관음사가 아닌 대한민국 검찰이 나섰다.

어처구니없지만 일본 관음사는 보기 드물게 피고 참가인이라는 신분이 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결국 대한민국 검찰은 우리나라 문화재를 약탈한 일본을 위해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소유권 법정다툼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더구나 최근 국제사회에서 일고 있는 약탈한 문화제 제자리 돌려주기기류와도 상반된다.

두 번째 우려했던 일은 피고인 대한민국 검찰이 제기한 항소 이유 때문이었다.

불상에서 발견된 결연문의 진위 여부, 서주 부석사의 창건 시기, 법인격 유무 및 원고의 동일성 인정 여부와 함께 이 사건 판결이 국외문화재 환수 활동에 미칠 외교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제기한 판결이 미칠 외교적 영향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점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보상, 일제 강제징용(강제동원) 문제 등 '가해자의 불편을 치유하여 한일 현안 봉합에 나서는'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

혹여나 부석사 불상의 반환문제가 일본을 상대로 하는 정치외교적 타협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재판부는 불상을 국가가 지켜야 할 유산이 아닌 고려시대 서주에 있던 부석사의 소유물로 한정시켰다. 또한 현재 존재하는 부석사는 과거 존재한 서주 부석사와 동일성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유권이 없다고 판시했다.

해외에 현존하는 수십 만점의 소중한 우리 문화재가 졸지에 주인 없는 미아가 되는 순간이다. 더구나 대한불교조계종이 사실확인서를 통해 동일성을 인정한 부분도 인정하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도 축소 왜곡했다. 부석사 극락전 복원 공사 당시 발견된 상량문(1938년 제작)에 기록된 신라 문무왕 17년 봄 의상대사가 창건한 후, 조선 초 왕사 무학대사가 중창했고, 이후 4차례의 중창이 있다고 역사기록에 대해서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부석사가 당시의 부석사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약탈의 주체인 일본 관음사에 대해서는 피고 보조참가인인 관음사 또한 관음사를 세운 종관이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불상을 양수해 취득했는지 아무런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원고 주장과 같이 약탈해 불법 반출한 정황이 존재한다며 불상의 약탈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준거법으로 적용된 일본 민법에 따르면 법인이 설립돼 소유한 지 20년이 되었기 때문에 1973126일 취득시효가 완성됐다고 판시했다.

관음사는 1953126일 법인으로 설립되었기에 과거 약탈에 대한 책임이 없이 소유권이 인정된다는 판결이다.

다만, 재판부는 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는 문화재법 협약에 따라야 한다며 별개의 문제라고 판시했다.

추락하는 자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재판부는 민사적 소유권만 다툴뿐이라며 국민의 비난 여론을 회피하고자 노력했다.

약탈한 물건이라도 20년간 무탈하게 소유하고 있으면 취득시효가 완성된다.” 이 판결에 대해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역사적 기록은 인정하나 실체는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번 재판에 임하는 피고 대한민국 검찰이나 재판부의 곤욕스러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또한 적자생존의 국제경쟁 속에 내 자존심만 지키겠다는 옹고집도 능사가 아님을 안다.

그러나 한때의 정치외교적 수단이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사법의 정의를 훼손하며, 약탈당한 문화유산 회복의 길조차 막아버리는 선례를 남긴다면 앞으로 올 우리 후손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할까.

202321일은 부끄럽고도 두려운 날로 기억될 것이다.

박두웅 서산시대 전임기자
박두웅 서산시대 전임기자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