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133

글을 짓고 농사도 짓는 남설희 작가의 [오늘도 짓는 생활]을 읽다가 제목을 곰곰이 들여다보니 그 못지않게 나도 많은 걸 지으며 오늘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1. 밥을 짓다; 매일 밥을 짓는다. 보통 한 번에 두 끼 분량의 밥을 짓는데 계량컵으로는 3컵이 적당하다. 멥쌀과 찹쌀, 때때로 콩과 잡곡을 섞어 전기압력밥솥에 밥을 안친다.

2. 글을 짓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짓는다. 신문사에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들이 말하는 마감의 고통을 실감하게 되었다. 내 취미는 독서. 읽는 행위는 즐겁다. 쓰는 행위는 힘들지만 끝내고 나면 뿌듯하다.

3. 농사를 짓다; 작년까지 도시농부를 자처했다. 내 손으로 키우고 수확한 농작물은 맛과 건강과 기쁨을 안겨준다. 올해는 근교의 텃밭 대여가 불발되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다. 가까운 곳에 작은 면적이라도 내 땅이 있으면 좋겠다.

4. 옷을 짓다; 옷을 지으려고 재봉틀을 배웠다. 초급과정의 티슈케이스, 파우치, 쿠션, 앞치마를 만들고 나서 재봉틀 배우기를 그만뒀다. 재봉틀에 실 끼우는 기초부터가 내겐 너무나 어려운 과정이었다.

5. 미소를 짓다; 미소를 지으면 나도 모르게 반달눈이 된다. 딸도 나를 닮아 눈웃음을 친다. 나이가 많아지면 눈가에 잔주름이 생길 테지만, 웃어서 생긴 주름이라면 그리 밉지 않을 것 같다.

6. 눈물을 짓다; 눈물이 많은 편이다. 감정이 차오르면 말보다 눈물이 앞선다. 티비나 영화를 볼 때면 감정이 이입되어 눈물을 헤프게 흘린다. 남들 앞에서 눈물짓는 나약한 모습이 싫어 나는 엄마다. 엄마는 강하다를 되뇌며 참으려고 애써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아~ 다시 웃고 싶어졌지~” 신승훈의 노랫말처럼 우는 대신 웃고 싶다.

7. 집을 짓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친구들과 마당에 모여 두꺼비집을 지었다. 흙으로 된 마당이라 금을 그어 땅따먹기도 하고 사방치기도 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대부분 시멘트로 덮여 있고 나무가 심어진 화단만 흙이 노출되어 있다.

8. 죄를 짓다; 육아가 힘들어 아이들에게 죄를 짓기도 했다. 잔소리는 기본, 아이가 깜짝 놀랄 큰 소리도 내고, 완력으로 아이를 잡아당기기도, 식판을 빼앗기도 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아이를 끌어안고 사과했다가 날이 밝으면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지리한 시간을 보냈다.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9. 이름을 짓다; 딸들의 성별이 짐작될 때부터 어떤 이름을 지을까 고민했다. ‘소은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데 절에서 생시를 고려해 선정한 이름에는 소은이가 없었다. 가족들이 뽑은 후보 중 선택된 이름은 김다은, 김다연’. 모두 할머니가 지은 이름이다. 다연이는 요즘 자기 이름이 김다은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언니가 가진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5살 다연이다.

10. 약을 짓다; 영유아는 쉽게 아프고 자주 아프다. 갖가지 질병으로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 들락거렸다. 진료 후 들르는 약국은 약만 짓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 눈을 호리는 장난감들 때문에 영수증에는 배()보다 배꼽(장난감)이 커진 금액이 찍히곤 했다.

11. 말을 짓다; 아이들은 언어 제조기다. 며칠 전 학교 복도에서 반복적으로 루돌프 사슴코는 코! ! !”가 들렸다. 학령기가 되어도 똥, 방귀, 코딱지는 여전히 재밌는 소재다. 1학년 학생들은 끊임없이 코딱지 노래를 부르고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깔깔거린다.

12. 무리를 짓다; 햄스터는 무리를 짓지 않고 단독생활을 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내가 사슴 햄스터를 고른 이유는 두 마리가 사이좋게 꼭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사육장 하나에 두 마리를 키우기 위해 사슴 햄스터를 골랐으나 그들은 달아나기 선수였다. 아이들과 교감하기에 실패한 그들은 결국 동물원에 보내졌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점 반성한다.

13. 매듭을 짓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2022년의 매듭을 깔끔하게 짓기 위해 일 년 동안 했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끝이 보인다.

14. 한숨짓다; 휴직 동안 미용사 면허를 따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돌아가며 아팠다. 실기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시험도 포기했다. 새로운 곳으로 복직하는 것도 막막했다. 불안했고 곧잘 한숨지었으며 자주 답답함을 느꼈다.

15. 짝짓다; ‘알맞은 것끼리 둘씩 짝을 지으시오라는 미션이 있는 걸까. 다은, 다연이는 엄마는 내 짝지를 외치며 나와 짝이 되려 애쓴다. 아빠와 잘만 놀면서 아빠를 앞에 두고 엄마와 짝을 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럴 때면 아빠는 꿔다놓은 보릿자루만 못한 존재가 된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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