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132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집안 경제를 관리하는 사람은 대개 주부였다. 그러나 우리 집은 아니었다. 엄마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깐깐한 아버지에게 사사건건 사정을 말하고 돈을 받아 썼다. 엄마는 그 점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엄마가 돈 관리를 해보았는데 주변에 퍼주는 걸 좋아해서 돈이 자꾸 새나갔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빠가 돈 관리를 하는 게 낫다고 했지만 돈을 받아 쓰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도, 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결혼 후 직접 돈 관리를 하기로 했다. 매달 적금을 붓고 총액을 관리하는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남편은 흔쾌히 동의하면서 돈의 사용을 투명하게 하고 남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받을 생각하지 말고 줄 수 있는 만큼만 줄 것을 부탁했다. 돈거래에 질색하는 사람으로서 특별할 것 없는 부탁이었다.

딴 주머니 차지 않는 투명한 결혼생활이 시작됐다.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경제권을 넘겼다. 인터넷 뱅킹이 되어 은행에 갈 필요는 없지만 적금이나 예금을 가입하고 만기일을 챙기는 행위만으로도 너무 귀찮았기 때문이다.

나는 돈에 별 관심이 없고 남편은 돈과 숫자에 밝은 사람이다. 결혼 전 경제활동을 한 햇수는 비슷하지만 남편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모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관심과 소질이 있는 사람이 가계를 책임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경제권을 이어받은 남편은 평소 하던 대로 돈을 관리했다.

 


1. 천만 원 단위로 돈을 모아 괜찮은 이율의 정기예금 상품에 가입한다.

2. 그것을 여러 개 묶어 다시 같은 과정을 거친다.

3. 가입한 정기예금이 목돈으로 점점 불어난다.

4. 만기 이자를 받으면 소소한 소비를 하며 기쁨을 느낀다.

5. 통장의 예금 액수를 보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남편은 모험을 하는 대신 정기예금 꼬리잇기로 안정적인 재정관리를 했다. 결혼 전에 모은 돈으로 결혼과 동시에 내 집 마련을 한 데다 둘 다 낭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쓴다고 쓰는 데도 꼬박꼬박 돈이 모였다. 우리가 실천하는 건 낭비하지 않는 것과 직접 만든 가계부를 쓰는 것, 매달 용돈을 받아 쓰는 것, 세 가지가 전부다.

첫 번째, 가급적 낭비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 옷이나 물건은 물려받기도 하고 물려주기도 한다. 당근 거래도 한다.

두 번째, 가계부는 우리 집 상황에 맞는 항목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항목별 기록하고 매달 정산한다. 단순히 적고 계산하는 데 그치기 때문에 유의미한 행위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떻게 쓰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은 가능하다.

가계부를 통해 내 소비가 고스란히 상대에게 노출되니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지출이 신경 쓰일 때가 있다. 남편도 그러했는지 세 번째 방법인 용돈제를 제안했다. 각자의 용돈 통장에 매달 20만 원이 입금됐다. 얼마 되지 않는 액수지만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어 좋았다. 남편은 그 용돈을 모아 결혼기념일에 내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햇수를 거듭하며 개별용돈은 40만원으로 상향된 상태다. 때론 용돈으로 생필품도 사고 아이들 물건도 산다. 어디에 쓰던지 그건 내 마음이다.

엄마가 그러했듯 나도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전까지 매번 아빠에게 돈을 타 썼다. 돈을 받을 때마다 미안하고 번거로웠다.

용돈은 미리 정해진 금액을 받는 거라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잔고를 고려해 소비를 계획, 조절하니 합리적 소비가 된다. 이 좋은 걸 자랄 때 하지 못해 아쉽다.

결혼 9년 차, 이따금 남편은 저축액을 정산 보고하고 나는 주억거리며 듣지만 곧 잊는다. 남들 기준에는 아닐지 모르지만 내 기준으로는 충분히 풍요롭다. 그래서 지금까지 얼마를 모았더라? 남편이 알아서 관리하는데 나까지 머리 복잡하게 외울 필요는 없다. 에너지를 그렇게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저작권자 © 서산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