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해한 삶 속에서 겪은 죽음보다 더 죽음 같은 체험들

1인 극장으로 상영되는 처참하고 아름다운 고백록

죽고 싶다고 말하면, 더 살고 싶어져 온갖 아픈 장면을 흔들어 깨웠다

2019시인수첩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미소 시인의 첫 시집 가장 희미해진 사람이 걷는사람 시인선 74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데뷔 당시 시인은 공격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실험적이면서도 전통적이며, 거침없지만 진중하고, 차갑지만 따뜻하다는 다층적인 평을 받았다. 이번 시집에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시의 본령인 뜨거운 서정”(시인수첩심사평)으로 충만한 54편의 시가 실렸다.

김미소의 첫 시집은 처참한 고백록이다. 그는 괴물이라 불리던 어린 시절의 모습과 시각장애를 앓게 된 열네 살의모습, 그리하여 다름을 인정하는 일오래도록 아프고 외로웠던 일들을 고백한다.

과거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고통과 상처를 반복해야 했으므로 시인은 처음엔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시인의 말)고 밝힌다. 하지만 하지 않으려했던 말들이 결국은 해야만하는 이야기임을 받아들인 시인은 한 글자 한 글자를 바늘로 꿰매듯 기록하였고, 성장기의 상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의 모습은 처연하지만 단단하다. 과거의 불행을 시로써 치환하여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의지와 용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집의 첫 시에는 시인의 해체된 가족사가 드러난다. “동생들이 잠든 밤아버지와 어머니는” “더는 함께 살 수 없다고통보하지만, 시인은 스님이었던 아버지는 산속에 살고이미 가족은 함께 사는 게 아닌데도무지 함께 살 수 없다는 게 뭔지 몰랐다”(가족)고 말한다.

예기치 못한 가족의 해체는 시인을 불가해한 삶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렇게 불행의 연장선에 놓이게 된다. 그가 감지할 수 있는 세계는 이미 한쪽 눈을 잃었으니”(혼자만의 길) “밤이 허물어지는 신호”(손가락은 거미를 흉내 낸다)를 듣고 온몸으로 맞이해야 하는 균열된 세계뿐이다.

현실에선 지독히 난시일 수밖에”(같은 시) 없는 그에게 타자라는 존재는 모두가 가장 희미해진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 또한 가장 희미해진 사람이 되어 버린다. “기적은 좀처럼 오지 않”(열네 살), 시인은 선명한 세계를 향해 매듭이 풀릴 때까지/슬픔을 놓아주지 말”(못난 얼굴을)자고 다짐할 뿐이다.

현실을 지배하는 불행한 체험들로 인해 그는 불가항력적으로 몸의 감각을 신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이 시사하고 있는 죽음이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기존의 익숙한 느낌과 감각의 소멸이다.

그러한 인식으로 인해 어두운 관 속 같은 상황에서도 그래 이건 포옹이었지’(체험)라고 마침내 독백한다. 공포는 우리를 억누르지만 공포영화 속 이야기는 우리를 희열하게 만드는 그 자명한 이치처럼, 김미소는 기꺼이 죽음을 체험하는 자가 됨으로써 포옹과 속삭임, 다른 빛에 관한 이야기’(해설, 김주원)를 엮는 연금술사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처참한 삶의 기록들이 강렬한 파토스를 일으키면서 빛을 뿜어낸다.

추천사를 쓴 곽재구 시인은 그의 시가 고통의 나열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 시 읽기는 끝내 불편함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단하며, 결국 시인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가치는 그가 지닌 언어의 품격과 자유연상의 고상함이라고 진술한다.

김미소의 힘은 쉽지만 결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언어들의 춤을 선보인다는 데 있다. 희미해짐으로써 가장 돌올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 시인은 절망의 한끝에서 만나는 인간의 사랑’(추천사, 곽재구)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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