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쳐도 평온하고 공연하게 20을 내 것으로 하고 있으면 소유권이 인정된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구나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한번 훔쳤으면 영원히 도난품이고, 그것을 모르고 구입했어도 원래 주인이 돌려달라면 돌려주는 것이 법에 앞선 상식이고 양심적인 행동이다. 더구나 문화유산은 일반 물건과 달리 엄격히 다루고 있으니 더 그렇다.

하지만 서산 부석사 불상 재판 과정에서 피고는 그렇게 주장했다. 피고는 대한민국이고 이를 위임한 기관은 법무부의 검찰청이다. 피고 보조참가인은 일본 대마도 관음사로 불상을 600년 넘게 점유하고 있던 곳이다.

사실일까? 우선 이들의 지난 1017일 자 피고 준비서면을 보자.

일본 민법은 소유의 의사로 평온 및 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소정 기간 점유한 자에 대하여 시효에 의한 취득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자가 점유개시 당시 선의, 무과실이면 10년으로 선의, 무과실이 아니었더라도 20년으로 취득시효가 성립됩니다. (일본 민법 제162)”

그들은 소유의 의사는 절도범에게도 성립되고 도난당한 것을 알면서도 그 장물을 취득한 자에 대해서도 취득 시효가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는 왜구들은 13789월 서산의 천수만 일대로 침입한 왜구에 의해 서산 관아와 풍전역까지 약탈했다. 당시 부석사는 왜구의 주둔지가 됐다. 약탈 사실에 대한 사실 의식 없이, 인제 와서 20년 이상 공공연하게 전시도 하고 돌려달라는 다툼도 없이 평온하게 점유하고 있었으니, 이제는 부석사 불상이 아니고 쓰시마의 불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부석사 불상의 환수과정이 막바지에 오면서, 그동안 없던 주장이 나오면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이들의 주장대로 취득 시효가 성립된다면 약탈당한 문화유산의 회복은 영영 불가능하다. 도난이나 약탈 등의 사실을 인지하였더라고 20년이 지난 문화유산은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경남 양산의 부부총유물과 도굴왕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수집한 고분 도굴품 등 일제강점기 피해유산과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진주 연지사 동종, 가토 기요마사가 약탈한 세종 때의 의방유취, 고려말 왜구의 침탈로 빼앗긴 고려의 유산 등 수많은 유산이 취득 시효가 완료된다.

그동안 수많은 문화재반환 현장에 참여했지만, 이번 부석사 불상의 경우처럼 약탈품의 취득 시효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경우는 없었다. 더구나 대표적인 피해국인 대한민국의 정부 기관이 보조참가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주장에 맞서는 부석사는 악의적 점유 사실(타주 점유)을 입증하여, 그동안의 피해에 대해 배상(일본 민법 제191)’을 받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오래전의 역사적 사실이 구체적 기록으로 남지 않고, 물증 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피고는 이런 점을 파고들면서 역사적 사실과 정황을 모호성으로 치부하고 있다. 심지어 부석사의 동일성까지 부정하고 있다. 부석사 불상 소송과정에서는 역사와 정신은 없고 법리 논쟁만 벌이고 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문화재의 시대가 가고 국가유산의 시대가 도래했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411일 구시대의 잔재인 문화재라는 명칭을 공식 폐기하고 자연, 역사, 사람, 이야기를 담는 의미로 자연유산, 문화유산, 무형유산, 목록유산으로 분류하고 이를 국가유산으로 명명하였다.

이제 재화의 수단에서 인격적 가치가 강조되는 유산의 시대가 온 것이다. 1129일 영국이 125년 만에 나이지리아의 청동 유물을 반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취득 시효가 완료된 유물의 반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검찰과 일본 관음사는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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