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129

일 년에 한 번 있는 무 뽑는 날이다. 언젠가부터 가족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내 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계가족의 모계가족 행사다.

시어머니의 친정은 청령이라는 명칭의 시골 마을이다. 시어머니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친정집은 폐가가 되었고 폐가를 철거한 후에는 오래된 감나무와 집터만 남았다. 앞쪽 산비탈에 위치한 밭도 묵혀두면 언젠가는 쓸모없는 땅이 되고 말 것이다.

시어머니는 가장자리의 세 고랑 정도만 남겨두고 남은 면적을 동네 지인에게 빌려주기 시작했다. 동네 지인은 땅을 빌리는 대신 시어머니가 쓸 고랑까지 거름을 뿌리고 밭을 갈았다. 상부상조란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광경이다.

시어머니는 포슬하고 비옥해진 밭의 가장자리에 고랑 세 줄을 만들었다. 봄에는 열무를 가을에는 무를 심기 위해서다. 늦여름 혹은 초가을에 파종한 무는 위로는 따스한 햇빛과 서늘한 바람을 머금고, 아래로는 촉촉한 비와 땅의 양분을 쪽쪽 빨아먹으며 쑤욱 쑥 자란다.

시어머니는 가끔 고향 마을의 밭을 방문하여 소복하게 자라는 무를 솎아낸다. 뿌리()와 잎(무청)이 크게 자라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솎아낸 무는 신선하고 건강한 나물 반찬이 되어 시부모님의 식탁에, 때로는 우리 집의 식탁에도 오른다.

살아남은 무들은 약 3개월의 시간을 거쳐 크고 실하게 자란다. 무의 성장상태와 그 해의 날씨를 유심히 바라본 시어머니는 형제자매들에게 무 뽑을 날을 공지한다. 서리가 내리기 전인 11월의 어느 일요일은 언젠가부터 가족의 연중행사이자 축제가 되었다.

약속한 날, 청령 산비탈의 밭에 중년기에서 노년기에 접어든 5남매가 출동했다. 배우자와 몇몇 자녀들도 함께 모였다. 일꾼들(?)은 일사불란하게 무를 뽑고 다듬고 자루에 넣고 옮긴다. 간간이 허리를 세워 마을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껍질을 쓱쓱 벗겨낸 달큰한 가을무를 베어먹는다. 가을무는 보약이라더니 과일처럼 달다.

8세 다은이와 5세 다연이도 가뿐하게 무를 뽑는 것으로 제 역할을 해낸다. 작년까지는 무를 뽑다가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는데 그새 힘과 기술이 늘었다.

겨우 세 고랑뿐인데도 무와 무청, 달랑무가 수북하다. 각각의 종류들로 불룩하게 채워진 자루들을 가운데 놓고 형님이 더 가져가라, 아우가 더 가져가라아우성이다. 이것이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

몸도 쓰고 마음까지 후하게 쓰는 이 광경은 보면 볼수록 신이 난다. 형제자매들이 오랜만에 다 같이 고향에 모여 고향에서 난 것들을 인심 좋게 나누는 모습이 흥겹다. 그득해진 자동차의 트렁크 못지않게 각자의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마지막은 노동으로 출출해진 뱃속을 달랠 차례다. 어쩌면 이것이 이 축제의 진짜 하이라이트일지도 모른다. 시어머니가 예약한 식당으로 대가족이 대이동을 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 사이를 낯선 자동차들이 쪼르르 줄지어 달린다. 일 년 뒤를 기약하면서, 시골 마을이 키워낸 자손들이 고향마을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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