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엄마의 200점 도전기-124

조회대 앞쪽에 선 학생이 크게 외친다.

기준!”

그 학생을 중심으로 나머지 아이들은 앞으로 나란히를 하여 앞뒤 간격을 벌리고, ‘옆으로 나란히를 하여 양옆의 간격을 띄웠다. 계획도시처럼 넓고 반듯하게 닦인 길은 오직 선생님들만 돌아다닐 수 있었다.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 상장수여가 끝나면 교장 선생님의 훈화시간이 이어졌다. 지겹도록 긴 아침조회 시간이었다. 옆사람과 잡담을 하거나 가만히 서 있지 못해 줄을 흐트리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주의를 받았다. 그것으로도 교정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맨 뒤로 끌려가기도 했다.

마이크로 울려 퍼지는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 사이로 간혹 웅성거림의 파문이 일 때가 있었다. 그 작은 소란 후에는 양호실(보건실)로 업혀 가는 어린 학생의 모습이 인과관계처럼 따라왔다.

조회시간이 지겨워 몸이 베베 꼬이기는 했어도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픈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두 다리가 풀려 스스르 쓰러져 봤으면 하는 유치하고 쓸데없는 로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두 다리는 튼실하기만 했다.

그 시절 나는 겨울철만 되면 감기를 달고 살았다. 계절과 관계없이 입가가 자주 짓물렀는데 어른들은 내 입이 크려는 거라고 했다. 덩치도 작고 골고루 먹지도 않는 막내가 걱정된 엄마는 약국에서 미니막스라는 비타민을 사 왔다. 새콤달콤한 분홍색, 보라색 곰돌이 비타민은 맛이 아주 좋았다.

타고난 두 다리 덕분인지, 미니막스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미주신경성 실신은커녕 어지러움의 존재조차 느껴보지 못한 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말았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간에도 나는 요래조래 바이러스를 잘 피해 다녔다. 오른쪽, 왼쪽, 이번엔 점프, 하면서 잘 피하던 중에 그만 나의 운이 다하고 말았다. 목이 따끔따끔하더니 얼굴에 열감이 훅 느껴지고 이어서 열이 나더니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고열이 나면서 두통과 어지러움이 물밀 듯 몰려왔다.

휘청! 어지러움이란 이런 느낌이구나. 몸에 기운이 없네. 빙글~ 바닥에 누우니 몸이 아래로 쑥 꺼지는 느낌도 든다. 바닥에서 누가 나를 당기고 있는 걸까?

감염의 절정에서 내려와 서서히 회복되는 기간에도 어지러움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자꾸만 눕고 싶고 머리가 멍해졌다. 많을 잤는데도 눈가에 잠이 올라와 있었다. 무력감까지 더해져 며칠 사이에 나도 모르게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한 주간 어지러움을 징그럽게 느껴보니 이건 굳이 몰라도 될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지러움 이깟 것 알아도 별 도움 안 되고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지러움을 내 몸에서 훌훌 털어 보내련다.

내일은 어지러움 대신 영롱함으로 이른 아침의 문을 열어봐야지. 이제 알겠다. 소설 속 연약한 여자주인공은 내 몫이 아니다.

최윤애 보건교사
최윤애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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